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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아직도 두렵다

입력
2015.11.2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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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맞춤법이 틀릴까봐, 한국어 발음이 틀릴까봐 늘 두렵다. 점점 살아 갈수록 한국어 실력이 나아져 갈수록 두려움이 커졌다. 처음에는 어차피 말이 서투니까 이해와 용서가 되었고 글도 많이 쓰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 시간이 지나 생활에 적응하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점점 넓어져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한국어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도 한국에 산지 오래 되었으니 말을 하면서 발음을 정확하게 하고 글을 틀리지 않게 해야 한다는 요구가 늘 있었다. 특히 SNS로 소통하는 시대가 되면서 더 심해졌다. 한국 사람들은 문자메시지에서 맞춤법이 틀리면 실수이지만 내가 맞춤법이 틀리면 아직도 한글 못하는 외국인이 된다. 도대체 한국에 산지 몇 년인데 이것도 틀리나 하는 식이다.

처음 가는 모임이나 학부모 등과의 중요한 SNS 단체방에서 글쓰기는 조심스럽고 불편했다. 글이 틀릴까봐,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있을까봐, 실수로 오타를 낼까봐 늘 두렵다. 말로 소통을 하면서는 발음이 틀릴까봐, 상대방이 이해를 못할까봐, 내가 말을 잘 못 할까봐 걱정이 된다. 그래서 문자메시지를 쓸 때 남편에게 맞춤법을 물어보긴 한다. 아이들이 옆에서 고쳐주기도 한다. 옆에 아무도 없으면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내 자신이 초라해진다. 난 여기서 평생 살아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지 하는 마음 때문이다.

지난 여름 몽골에 갔을 때였다. 언니네 집 아파트 놀이터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외국인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언니네 윗집에 사는 러시아 사람인 것 같았다. 아파트 공사 하면서 불편하던 점, 날씨 이야기,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분의 말은 70% 정도가 몽골어, 30%는 러시아어였다. 그래도 언니는 끝까지 들어주고 맞장구치면서 대화를 했다.

그 분이 간 후에 내가 물었다. “언니 윗집에 외국인이 사는구나” 했더니, 대답은 “아니야, 우리 이웃인데 몽골인과 결혼해서 이 동네에서 20년 넘게 사신 분이야”였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근데 그 분이 몽골어, 러시아어를 같이 쓰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데 언니는 알아듣고 이야기를 잘 하네”라고 했더니, 언니는 “그래도 요점은 알아듣고 마음을 알 수 있으니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분을 풀어줘야지 같이 사는 이웃인데”라고 했다.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올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 주변사람들도 우리 언니처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약간 서툰 언어가 두려워 내 마음과 기분을 전달하고 나누고 위로 받지 못하고 혼자서 완벽을 고집하고 있는 것인지, 반대로 그들은 한국에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완벽한 말솜씨나 맞춤법 틀리지 않은 글을 요구하는지. 심지어 나를 이웃으로 생각하는 것인지까지 궁금해졌다.

한국에 오래 살다 보니 몽골 생활에서는 갈수록 멀어져 몽골의 최근 유행어나 유머를 잘 모른다. 몽골에서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 하면서 대화가 안 통할 때가 있다. 누가 유행어를 써가면서 농담을 하거나, 최근 나온 유머를 하면 따라 웃지 못한다. 그때는 허전하다. 내가 여기서도 소외될까봐 약간 두려워지기도 한다. 내가 살았던 곳과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내 마음을 다 열고 하는 원활한 소통이 안 될 수도 있고, 그러면 너무 불행한 삶을 살게 될까봐 걱정도 된다.

그런데 몽골에서 그 러시아 사람을 보면서 새삼 무엇이 그리 두려웠는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처럼 다가가서 이야기를 하면 된다. 말이 서툴더라도 그 러시아 사람처럼 이 공간과 이 시대를 함께 살면서 같은 불편을 겪으며 함께 힘들어하고, 때로는 좋은 일을 같이 경험하며 더불어 행복하고 기뻐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이웃이 아닌가. 함께 울고 웃으면서 살자는 마음을 전하면 주변에서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꼭 응원해 주지 않을까.

막사르자의 온드라흐 서울시 외국인부시장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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