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괴물’이라 불린 사나이는 많았지만 이런 괴물은 드물었다. 일본 신예 투수 오타니 쇼헤이(21·사진·니혼햄) 얘기다. 오타니는 지난 8일 일본 삿포로 돔에서 열린 ‘프리미어 12’개막전에서 최고 시속 161km 광속구에 147km의 포크볼까지 선보이며 한국 타선을 꽁꽁 묶었다. 한국은 이날 오타니에게만 6이닝 동안 무려 10개의 삼진을 빼앗기며 0-5로 패했다. 오랜만에 만난 괴물다운 괴물 오타니는 19일 도쿄돔에서 열릴 예정인 한국과의 4강전에 다시 선발로 나선다. 마쓰자카 다이스케(35·소프트뱅크) 다르빗슈 유(29·텍사스) 등 역대 일본 괴물 투수 계보를 살펴보며 오타니의 가치와 잠재성을 들여다봤다.
원조 괴물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
마쓰자카는 100개 이상의 공을 던져도 150km 이상의 공을 뿌릴 수 있는 탄탄한 내구력을 지닌 투수였다. 여기에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커터 등 양질의 변화구를 다양하게 구사해 데뷔 초반부터 괴물 투수로 명성을 날렸다.
일본 프로야구 세이브 라이온스에서 데뷔한 1999년, 16승 5패를 기록한 마쓰자카는 이듬해 14승, 그 다음해는 15승을 거두며 3년 연속 다승왕을 차지했다. 꿈의 메이저리그 첫해인 2007년에는 메이저리그 진출 일본인 신인투수 중 최다인 15승(12패)을 거뒀고, 2008년에는 노모 히데오의 종전 기록인 16승을 넘어서며 메이저리그에서 시즌 최다승을 거둔 일본인 투수가 됐다.
국제대회에서도 일본 마운드의 에이스 다운 면모를 보였다. 일본이 우승을 차지한 2006,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MVP를 모두 휩쓸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혹사를 견디지 못한 마쓰자카는 2009 시즌부터 하향곡선을 그렸다. 2009 시즌부터 2014 시즌까지 거둔 승수는 모두 합해 23승. 반짝 활약한 2010 시즌(9승)을 제외하면 5승을 넘긴 시즌이 없었다.
그러나‘아시아의 라이벌’ 한국과의 국제대회 맞대결 성적은 평범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 예선전과 동메달 결정전에 2차례 등판했지만 한번도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고, 2009년 WBC에선 1승을 거둔 바 있다.
꾸준함을 갖춘 괴물 다르빗슈 유
반면 마쓰자카 시대와 맞물려 등장한 또 다른 괴물 투수 다르빗슈는 꾸준한 성적으로 마쓰자카를 넘어섰다. 니혼햄에서 데뷔한 2005년을 제외하고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니혼햄)과 미국(텍사스) 무대에서 9시즌 동안 해마다 10승 이상을 거뒀다.
특히 프로 데뷔 3년 차였던 2007년 최고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와무라 상을 수상하며 이듬해 연봉 2억 엔을 찍었다. 이후 꾸준히 연봉을 높이다. 2011년엔 무려 5억 엔의 연봉을 찍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에도 상상을 초월한 포스팅 규모로 전세계 야구계를 들썩이게 했다. 2011년 12월 5,170만 달러(약 605억 원)의 포스팅 비용을 기록한 다르빗슈는 6년 총 계약금액 6,000만 달러(약 703억 원)를 기록하며 당시 포스팅 비용과 총 계약 규모 기록을 세웠다.
다르빗슈는 한일전에서 2009년 WBC 당시 한 번 등판해 1패를 기록했다.
타격 능력까지 더한 진짜 괴물 오타니
니혼햄 입단 당시 다르빗슈의 등번호 11번을 물려받은 오타니는 다르빗슈를 넘어설 재목으로 평가 받는다. 오타니가 진짜 괴물인 이유는 또 있다.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서 매우 드물게 투수로서도, 타자로서도 빼어난 활약을 펼쳐온 ‘이도류(二刀流·투타겸업 선수를 이르는 표현)’선수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겸업 중이나 프로 무대에서 이도류 선수로의 롱런이 쉽지 않기에 다르빗슈는 투수에, 이치로는 타자에 전념하길 권하는 흥미로운 상황도 있었다. 오타니의 잠재력은 연봉 상승률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프로 1년차에 1,500만엔, 2년차에 3,000만 엔을 받은 오타니는 3년차인 올시즌 무려 1억 엔의 연봉을 받았다. 지난해 투수로 11승을, 타자로 0.274(87경기 10홈런·31타점)의 준수한 타율을 기록한 결과다.
괴물임엔 분명하나 공략 못할 대상은 아니다. 19일 4강전에서 오타니를 맞을 한국 대표팀의 상황이 개막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한국은 지난달 26일 대표팀 소집 후 공식 훈련을 진행했지만 한국시리즈에 뛰는 선수들이 많아 미니 청백전도 치르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의 대표팀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감이 올라왔다. 일본전 이후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멕시코, 미국전을 거치면서 150km 이상의 강속구 투수를 연이어 상대해 타자들의 눈은 빠른 공에 많이 익숙해졌다.
일본의 자극도 선수들의 투지에 불을 지폈다. 일본은 전승 우승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준결승 일정까지 하루 앞당기는 ‘꼼수’를 쓰는 한편, 결승전 선발투수까지 미리 낙점해 발표했다. 한국 대표팀의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셈이다.
일본 도쿄돔에서의 한일전 성적은 2승 1패로 우위다. 지난 2009년 WBC 대회 이후 6년만에 ‘약속의 땅’을 밟았다. 대표팀은 일본이 준비한 잔칫상을 뒤엎을 채비를 갖췄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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