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는 영화 팬들에게 애증의 장소다. 첫 인연부터 애틋하면서도 얄궂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교통사고로 숨진 장남 선재씨를 기리기 위해 1998년 건립한 아트선재센터는 2002년 5월 시네마테크(영화를 보관하고 상영하는 공간) 서울아트시네마를 품으며 영화 팬들과 인연을 맺었다.
2002년 8월 일본 감독 나루세 미키오의 회고전이 유난히 기억난다. 미키오의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를 보고 나올 때 박찬욱 감독을 먼발치에서 봤다. 2005년 개봉한 박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이영애)가 교도소 출소 뒤 취업하는 빵집 이름이 나루세다. 빵집 주인 장씨(오달수)는 일본에서 제빵 공부를 한 것으로 묘사된다. 자연스레 2002년 늦여름이 떠올랐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소격동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05년 5월 아트선재센터가 내부 공사를 이유로 재계약 불가를 통보하며 서울아트시네마는 낙원동 허리우드극장으로 옮겨갔다. 시네필들의 소격동 시대도 시간 속으로 묻히는 듯했다.
2008년 9월 예술영화전용관 씨네코드선재가 아트선재센터에 둥지를 틀며 영화 팬들의 발길이 다시 소격동을 향했다. 국내 최초 예술영화전용관 동숭시네마테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씨네코드선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위치한 소격동에 문화의 향을 더했다. 하지만 씨네코드선재도 이달 문을 닫는다. 표면적 이유는 건물 리모델링이다. 서울아트시네마가 눈물을 뿌리며 소격동을 떠났던 10년 전을 연상시킨다.
씨네코드선재의 고별 행사는 대만 감독 허우샤오시엔 전작전(22일까지)이다. 허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 ‘귀여운 여인’(1980)부터 최신작 ‘자객 섭은낭’까지 19편을 일별할 수 있다. 아트선재센터에 사소한 추억이라도 지닌 영화 팬이라면 아마 ‘연연풍진’(1986)을 보며 복잡다단한 심경에 처할 것이다.
‘연연풍진’의 젊은 남자 주인공 완은 청소년기부터 교제하고 결혼 약조까지 한 여자친구 후엔을 두고 군에 입대한다. 하루가 멀다 하며 편지를 주고 받다가 제대를 앞두고 후엔의 편지가 끊긴다. 군복무를 마친 완이 후엔을 찾았을 땐 두 사람의 편지를 배달했던 우체부가 후엔의 남편이 돼 있었다. 예술영화를 사랑해 아트선재센터를 찾았는데 정작 예술영화는 사라지게 된 소격동의 현재와 맥을 같이 한다. 씨네코드선재를 보내는 마음은 쓸쓸하나 7년의 후의가 고맙기도 하다. 아듀, 소격동 예술영화 시대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