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정부가 새해 예산안 처리를 여권이 공을 들이고 있는 주요법안 처리와 연계하겠다는 방침을 전면화하며 야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소수 야당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써온 ‘예산안 연계’ 전략을 들고나선 건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한 고육지책 성격이 강하다. 연계전략은 더 이상 야당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비아냥과 함께 여당 스스로 정치력 부재를 드러낸 꼴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與, “예산ㆍ법안 연계” …국회선진화법 활용 역공
새누리당 지도부는 새해 예산안을 주요 법안 처리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17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당ㆍ정 간담회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꼭 통과시켜야 할 경제활성화법,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등을 처리하기 위해 야당이 필요로 하는 예산안과 연계해 처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득이한 현실에 처했다”고 밝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전날 “경제활성화법 등을 통과시키지 않고 예산안만 통과하면 의미가 없다”며 ▦노동개혁 5대법안 ▦경제활성화 법안 ▦한·중FTA 비준안 연계 처리 방침을 뜻을 시사했다.
예산안 연계 전략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예산 확보가 절실한 야당 의원들의 다급함을 파고든 것이라는 평가다. 정부ㆍ여당의 협조 없이는 야당 의원들이 목을 매는 지역구 사업 등을 위한 추가 예산 확보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날 당정 간담회에서 야당이 요구하는 영ㆍ유아무상보육(누리과정) 예산 국고 지원 등을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론이 쏟아진 것도 예산안 연계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행법상 이달 말까지 여야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12월 1일 정부 예산안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부의 되고 국회는 24시간 내에 이를 처리해야 한다. 물론 법정처리 시한인 2일까지 여야가 수정안을 낼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 국회 과반을 점하고 있는 여당이 단독 수정안을 마련해 통과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용남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당정 간담회 결과 브리핑에서 정부ㆍ여당 단독으로 예산안 수정안을 마련하는 방안을 시사하기도 했다.
野, “야당 겁박 한심한 발상”…철회 요구
예산안 연계 전략은 지금까지 야당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활용해왔다는 측면에서 여당의 선택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여권 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주요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언급한 데 따른 부담감이 고육지책을 선택한 배경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정기국회를 넘기면 19대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들은 사실상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되는데, 여당 지도부도 법안 처리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법안 처리와 관련해 여당이 받는 압박도 상당하다”며 “정부도 야당을 설득할 뾰족한 수단이 없다고 두 손을 드는 상황에서 예산 말고는 야당을 끌고 갈 수단이 전무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한심한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졸속 심사와 국민 갈등이 우려되는 법안과 예산 연계는 예결위를 무시하는 행위”라며 “야당을 겁박하는 한심한 발상을 철회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범계 새정치연합 의원도 예결위 예산심사소위에서 “집권 여당이 시혜적으로 예산을 나눠주듯이 하겠다고 한다”며 “왕정시대에나 있을 법한 발상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전혼잎기자 hoihoi@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