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심판 설명회 ‘토크 어바웃 레프리’를 개최했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았던 이 설명회의 목적은 명확했다. 심판 운영의 민낯을 보여주면서 판정을 향한 불신을 씻어내겠다는 의도였다.
연맹은 이날 설명회에서 K리그 전반기 1~23라운드에서 경기당 평균 4.06건의 오심이 나왔고, 페널티 킥은 79.8%, 경고는 84.9%, 파울은 90.8%의 정확도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수치적 결과물 외에도 심판의 징계 절차와 현황, ‘거점 숙소제’등의 배정 시스템, 심판 승강제 등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며 심판계는 폐쇄적이라는 이미지를 없애려 노력했다.
지난달 말 만난 K리그 관계자는 신뢰 회복을 위한 더 큰 그림이 있다고 말했다. 프로경기 심판조합(PGMOL·Professional Game Match Officials Limited)을 설립해 심판 운영의 독립성을 갖춘 영국과 연봉이 900만엔(약 9,000만원)~3,000만엔(약 3억원)에 달하는 14명의 ‘스페셜 레프리’를 둔 일본의 심판 운영 시스템 등을 설명하며 “한국에 접목 가능한 사례들을 착실히 도입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심판 신뢰 회복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 셈이다.
● ‘매수 의혹’ 파문… K리그 전현직 심판 5명 소환
하지만 예열도 되기 전에 시동이 꺼질 위기를 맞았다. 16일 일간스포츠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최근 돈을 받고 특정 프로축구팀에 유리한 판정을 한 의혹을 받은 K리그 심판들을 소환 조사했다.
복수의 축구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총 5명의 K리그 전현직 심판이 피의자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들 심판은 외국인 선수 계약 당시 몸값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수억 원을 빼돌린 혐의(업무상 횡령)로 구속 기소된 안종복 전 경남 FC 사장에게서 “유리한 판정을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5명의 심판 중 현직 심판 한 명은 혐의를 부인했고, 4명은 혐의를 일부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들은 돈을 받은 사실은 시인했지만 승부를 의도적으로 조작한 혐의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5명의 심판 중에는 이름이 꽤 알려진 심판들이 포함돼 있어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축구계에 아물기 힘든 상처가 남을 수도 있다.
조영증 K리그 심판위원장을 비롯한 연맹 관계자들도 최근 부산지검의 조사에 임했다. 조사에서는 판정에 대한 기준과 오심 장면에 대한 설명 등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연맹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숨김 없이 진술했다”고 전하며 “혐의를 받고 있는 21경기의 (경남) 승률이 낮아 승부가 조작됐다고 판단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전했다.
실제 경남은 지난해 막판까지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올해 K리그 클래식(1부리그)에서 K리그 챌린지(2부리그)로 강등됐다. 하지만 한 축구관계자는 “지난 시즌 막판 경남에 유리한 판정이 유독 많아 K리그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들끓었다”고 전했다.
올해 검찰이 스포츠 4대악(승부 조작 · 편파 판정, 폭력 · 성폭력, 입시 비리, 조직 사유화) 근절 의지를 드러낸 만큼 수사 확대 가능성도 충분하다. 실제 축구계에선 또 다른 전 프로축구단 고위관계자에 대한 조사 여부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 심판계 신중한 반응 속 “정화 기회일수도”
소식을 접한 심판계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대다수의 심판이 말을 아끼는 가운데 “이번 일로 신뢰도가 와르르 무너질까 걱정이 크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심판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번 수사가 환부를 도려낼 기회란 반응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심판은 “진 팀에서 물증 없이 이런 저런 의혹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부적절한 행실로 구설에 오른 심판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런 심판들 때문에 심판계 전체에 대한 불신이 만연했고, 되레 신념을 지켜 온 심판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심판 역시 “심판의 제1원칙은 청렴”이라며 “심판을 자주 흔드는 것도 옳지 않지만 부정 행위에 대해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축구관계자는 “이 시점에서 그들이 왜 ‘No’를 외치지 못했는지에 대한 고민과 반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연·지연으로 인한 폐해는 아직도 축구계를 좀먹고 있다”며 “심판들의 부정 행위가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사실이라면 엄정하게 대처해 경각심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도자들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16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 열린 지도자 보수교육 현장에서 만난 한 지도자는 “지도자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심판이 경기를 좌지우지 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체 없이 돌던 얘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 시기가 어쩌면 심판 신뢰 회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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