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등장하는 말 중에 ‘갑질’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말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약자인 상대에게 하는 부당한 행위’를 가리킨다.
이 말은 차례나 등급을 매길 때 첫째를 이르는 ‘갑’에 접미사 ‘질’이 결합해서 만들어졌다. 보통 계약서를 쓸 때 계약의 두 당사자를 편의상 ‘갑, 을’로 칭하게 되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쪽이 ‘갑’이 된다. 이런 관습으로부터 ‘갑’에는 권력이나 지위가 높은 쪽, ‘을’에는 낮은 쪽의 의미가 덧씌워지게 되었다.
여기에 ‘질’이 붙어 새말이 만들어진 게 흥미롭다. ‘질’이 붙은 말은 대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물론 ‘가위질’이나 ‘바느질’처럼 부정적인 뜻 없이 단순히 그 도구를 사용해서 하는 일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직업이나 직책, 또는 사람이 하는 행위에 ‘질’이 붙을 때는 그 일을 비하하거나, 또는 그 일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가치 평가가 덧붙는다.
비단 ‘도둑질’ ‘싸움질’ ‘고자질’ 같이 본래 나쁜 일을 가리킬 때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선생질’이 있다. 학생들을 교육하는, 존중 받는 직업에 ‘질’이라는 접미사가 결합됨으로써 그 일을 하찮게 여기거나 낮잡는 상황에서만 쓰는 말이 돼버린다. ‘전화질’이나 ‘자랑질’도 마찬가지다. 쓸 데 없이 자주 전화를 하거나 지나치게 자랑을 많이 하는 경우를 비난하는 의미로만 쓰인다. 그런데 북한말에는 ‘질’에 그런 비하의 뜻이 없다고 한다. 새터민들 중에는 ‘선생질’을 ‘교사로서의 직분’이라는 평범한 의미로 썼다가 남한 사람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사전에 없지만 ‘갑질’이란 말에는, 그런 행동이 해서는 안 될 ‘못된 짓’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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