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 참사에도 시리아 난민을 계속 수용하겠다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침에 반기를 든 미국의 주(州)가 시간이 지나면서 급속히 늘고 있다.
16일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국 동부시간 오후 4시 현재 미시간·앨라배마·텍사스·아칸소·일리노이·인디애나·루이지애나·미시시피·매사추세츠·애리조나·오하이오·노스캐롤라이나·위스콘신·뉴햄프셔·플로리다·메인 주 등 미국 50개 주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16개 주가 시리아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 동참하는 주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를 자행한 용의자 중 일부가 유럽으로 온 시리아 난민으로 가장해 침투했다는 보도가 잇따른 데 따른 조처다.
민주당이 집권한 뉴햄프셔 주를 제외한 15개 주 모두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 정책에 강경하게 반대하는 공화당이 집권한 곳이다.
미시간 주와 앨라배마 주가 파리 테러 발생 이틀 후인 15일, 가장 먼저 시리아 난민 수용 거부 방침을 밝힌 데 이어 16일에만 14개 주가 차례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16일 터키 안탈리아에서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난민 심사를 강화해 테러 단체 연계자를 추려내는 방식으로 계속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지만, 공화당 주지사들은 이런 발표를 기다렸다는 듯 거세게 반발했다.
16개 주의 주지사들은 한결같이 주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으로 각 주로 유입될 시리아 난민 중 테러 단체와 연계된 이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수용 거부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보다 확실한 안전 대책을 수립할 때까지 연방 정부가 시리아 난민의 미국 수용과 각 주로의 분산 배치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50개 주중 공화당이 집권한 곳은 31개 주, 민주당 집권 주는 18개 주(하와이 주지사는 무소속)여서 시리아 난민 수용 불가 대열에 합류할 주는 더 증가할 수도 있다.
릭 스나이더 미시간 주지사와 로버트 벤틀리 앨라배마 주지사는 각각 전날 성명을 내고 시리아 난민의 주 내 정착을 중단 또는 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스나이더 주지사는 미국 국토안보부가 시리아 출신 난민의 미국 수용 절차를 완벽하게 검토하기 전까지 난민 수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시간 주는 중동에서 온 무슬림이 미국에서 가장 많이 모여 사는 지역 중 하나다. 디트로이트 시 인근 햄트래믹 시에서는 이달 초 미국 최초로 무슬림이 과반을 차지한 시의회가 탄생하기도 했다.
스나이더 주지사는 9월에만 해도 연방 정부와 시리아 난민 수용을 논의 중이라며 열린 자세를 보였으나, 파리 테러 이후 태도를 180도 바꿨다.
벤틀리 주지사 역시 앨라배마 주를 직접 겨냥한 테러 위협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테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할지라도 주민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겠다”며 시리아 난민을 안 받겠다고 했다. 2011∼2014년 사이 이라크와 소말리아 등에서 온 난민 381명이 앨라배마 주에 정착했지만, 시리아 출신 정착민은 1명에 불과하다.
대통령 선거를 위한 공화당 경선에 출마한 보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14일 백악관에 성명을 보내 “파리에서와 같은 참사가 이곳에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루이지애나 주가 얼마나 많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공개로 따졌다.
그러다가 공화당 주지사의 집단 반발이 현실화한 16일, 시리아 난민의 정착 중단을 골자로 한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일부 주의 시리아 난민 수용 거부 선언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시리아 난민을 계속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참석 후 기자회견에서 “난민의 면전에서 문을 세차게 닫는 것은 미국의 가치에 어긋난다”면서 “심사를 더욱 강화해 시리아를 포함한 더 여러 국가의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난민 심사 과정에서 종교도 고려해야 한다는 일부 정치권 인사들의 주문에 대해 “부끄러운 일”이라며 “미국적이지 않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2016회계연도(올해 10월 1일∼내년 9월 30일)에 시리아 난민을 1만 명 이상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터라 연방 정부와 주 정부의 갈등은 앞으로 더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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