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그만두고 거리로 나가자.”
이달 초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대자보가 붙었다. 서울대 철학과 심미섭씨는 지난달 31일 있었던 국정화 반대 집회를 거론하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분명 캠퍼스를 뒤덮었는데 막상 거리에 나온 사람은 많지 않았다”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른 채 망연자실하는 소시민이 되지 않기 위하여 학우 여러분 나가자”고 적었다.
대학 캠퍼스 안에서 대자보를 붙이고 촛불을 켜며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내던 대학생들이 14일에 열린 청년총궐기 및 민중총궐기를 기점으로 거리로 나왔다. 서울대를 비롯한 이화여대 등 대학 총학생회도 “총궐기에 함께 나서주시길 호소한다”며 학생들을 모았고 이날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는 단체, 개인 참가자 등 2,000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난 인하대 문화콘텐츠학과 박규호(20)씨는 “10살짜리 동생이 나중에 국정 역사교과서로 공부하게 할 순 없다”고 총궐기에 나온 이유를 밝혔다.
청년들은 국정교과서 반대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맞닥뜨린 현실의 문제에 대해서도 호소했다. 이들은 “국정교과서 반대” 외에도 “재벌곳간 열어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교육공공성 강화하라” 등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국정교과서가 과거와의 싸움이라면 노동개악 저지는 미래와의 싸움”이라며 “가족, 친구들이 앞으로 살 사회에선 일하는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자친구와 함께 참가했다는 고려대 컴퓨터학과 정우준(23)씨는 “임금피크제로 청년들을 챙긴다고 하지만 정규직이랑 비정규직 격차만 늘리고 있어 노동개혁 문제를 지적하러 나왔다”며 “부모님과 우리 세대의 권익은 서로 깎아먹는 게 아니라 함께 신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에서 전세버스를 빌려 타고 온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 경북대네트워크’를 통해 상경한 경북대 심리학과 이문호(20)씨는 “국정화 사안도 있지만 현재 1년 넘게 총장이 없는 경북대의 문제도 심각하다”며 “정부가 대학은 총장 임명을 통해 규제하려 하고 역사는 국정 교과서로 통제하려는 게 아닌가 싶어 대학생으로서 목소리를 내러 왔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구ㆍ경북 지역에서 계명대, 영남대 등 학생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고 전했다.
대학로에서 청년총궐기를 마친 학생들 중 일부는 보신각을 지나 늦은 저녁 광화문광장으로 진입하려는 민중총궐기에 합세했다가 귀가했다. 한편 이날 집회에 참여했던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는 16일 “(국가를) 말로 해선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다, 행동으로 내보여야 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써 붙이고 다음달 5일 열리는 총궐기에 “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양진하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