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ㆍ13 파리 테러는 잠재되어 있던 이슬람국가(IS)의 위력을 전세계에 보여준 공포 그 자체였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혼란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과도기적 공백상황에서 기생하는 조직 정도로 IS를 간주해 왔던 서구는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14년간 인류를 테러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알 카에다가 슬그머니 퇴조하고 9ㆍ11 테러의 온상이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마저 서서히 IS에게 잠식당하는 상황에서 IS가 파리에서 저지른 조직적이고 치밀한 대량 살상 테러는 인류에게 전선 없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유럽 전역에 뿌리 내리고 있는 무슬림 이주민 후세들이 그 동안 소외 당하고 차별 받아왔던 분노의 응어리를 IS와 연계해 극단적으로 표출하려는 행태다. 알 카에다의 존재감 상실로 위축되어 있던 지역 테러 조직들이 대거 IS 지도자 알 바그다디에 충성맹세를 하면서 IS 휘하에 몰려들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러시아 여객기의 폭탄 테러를 자행한 ‘성전의 수호자(Ansar Beit al-Maqdis)’가 이미 IS 이집트 지부로 활동하고 있고, 북아프리카 알 카에다 지부 격인 안사르 알 샤리아(Ansar Al Sharia)는 리비아에서 이슬람국가를 선포했다. 예멘의 알카에다와 알카에다 마그레브 지부(AQIM)까지 가세한다면 IS의 위력은 가공할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IS는 최근 ‘호라산 지방(Wilayat Khorasan)’이란 이름으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전선에까지 진출하여 탈레반과 무력충돌하면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IS는 알 카에다와 탈레반을 대신한 새로운 국제적 테러조직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는 지난 14년간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4조 달러 가량의 예산을 쓰고도 알 카에다와 탈레반은 제거되지 않았으며, 테러는 오히려 그 빈도, 희생자수, 테러조직의 숫자 등에서 약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인류는 테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할 시점에 와 있다.
첫째는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의 전쟁과 파괴 행위, 시리아 내전에서의 25만명 사망, 이라크 전쟁에서 무고한 민간인 22만명 희생 등으로 가족을 잃은 극단적 분노집단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논리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복수세력들이 IS의 단단한 세력이 되고 있다. 이들을 향한 인도적 지원과 민생 경제 지원이 테러 예방의 핵심이다.
둘째, 시리아와 리비아 내전에서의 대혼란과 서구의 내전 개입에 이 지역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내전으로 야기된 난민 대참사에서 보여준 유럽의 반인도적 이기주의에 이슬람인들의 배신감은 극에 달했다. 지난 9월 터키 해안에서 시리아 소년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세계 여론이 난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유럽연합은 난민 일부 수용 쪽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난민문제에는 유럽의 책임이 절대적인데도 난민의 90% 이상은 요르단이나 터키 등 이웃 나라에 몰려있다. 그럼에도 여론에 밀려 고작 난민 수만 명을 받아들이겠다는 독일 메르켈 총리를 두고 노벨평화상 운운하는 것은 터키와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셋째, 이슬람인들은 서구의 이중 잣대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IS의 요르단 조종사 화형 장면에 온갖 비난을 쏟아내면서, 이스라엘 공격으로 타 죽은 세 살짜리 팔레스타인 소녀의 죽음 소식은 묻혀 버리거나 주목 받지 못한다. 이번 파리 테러는 2014년 12월 파키스탄 페샤와르 학교에 탈레반이 침입해 132명의 아이들을 포함한 141명을 학살한 사건 때의 국제적 관심과 비교된다. 파리 테러 하루 전 레바논 베이루트 도심에서 일어난 IS 연계 테러로 43명이 숨지고 200명 이상이 부상당하는 대참사 때도 각국 지도자들은 위로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생명의 가치는 지역과 무관하게 동등하다는 사실을 새삼 되새겨주길 이들은 요구한다.
IS의 성장에 대한 책임은 일부 중동 이슬람국가들도 피해갈 수 없다. IS로 인한 중동의 대혼란과 생존권 위협은 아랍 민주화 열망을 잠재우기에 충분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이집트 군부와 사우디아라비아 왕정, 시리아 독재정권이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중동 이슬람권 대중들은 유럽의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생겨난 반서구 정서를 뛰어넘어 반이슬람적 IS 퇴치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한다. 이슬람권의 전폭적인 협조 없이 서구의 테러 궤멸 전략은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고, 테러 확산은 결국 유럽 극우파들에 의해 이슬람 공포증을 확산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것이다.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IS 테러를 뿌리 뽑기 위한 국제 공조가 논의되었다. 가장 중요한 정책적 과제는 테러분자 궤멸 노력보다 테러분자들을 양산하지 않는 국제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IS의 최대 후원자인 극단적 분노세력과 전쟁 피해자들의 극심한 사회적 고통을 완화시키는 소프트 파워 전략이 비중 있게 채택되어야 한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조속한 정치적 안정, 대폭적인 민생경제지원,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치유 프로그램과 고아들에 대한 교육 기회와 취업 알선, 난민 수용 같은 노력이 따르지 않는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구름처럼 몰려드는 IS 자살특공대의 행진을 결코 꺾지 못할 것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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