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분열과 갈등의 레토릭

입력
2015.11.13 20:00
0 0

대통령은 반대 진영도 포용하는 지위

박 대통령 발언엔 피아 구분만 존재

통합과 갈등 조정의 레토릭 구사해야

대통령의 발언은 국정 운영의 방향이자 정부 정책의 최종 결론이다. 상세히 말하지 않아도, 내용이 추상적이어도 상관 없다. 대통령이 큰 틀만 잡아 주면 정책화 작업은 내각의 몫이다. 공무원 사회는 그런 작업에 최적화한 조직이다.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기에 대외적으로는 신중하고 절제된 표현을 사용한다. 해서 외교 상대국이나 언론은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공을 들인다. 민감한 이슈를 다루는 외교 무대에서는 다중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한 발언이 유리할 때도 많다. 만일 대통령이 외교전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낸다면 상상할 수 없는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 특히 갈등의 비등점이 높고 찬반이 극명한 이슈에 대해 발언한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마치 내각에 지시하듯이 일방적으로? 아니면 외교적 수사처럼 철저히 사전에 준비된 범위 내에서 절제된 표현으로? 이도 저도 아니라면 작심한 듯 격정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방식으로?

선택은 대통령의 캐릭터와 판단에 달렸지만 국가 차원에서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이 국가 운영과 발전을 위해 이미 확신이 서서 결심을 했다 해도 대통령이라는 지위의 특성상 그의 발언은 한 방향으로 경도됐다는 인상을 주어선 곤란하다. 몸에 기름칠을 한 듯 지나치게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주관도 소신도 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격정적인 직설 화법은 카타르시스 효과를 거둘 순 있겠지만 안정감이 떨어져 오히려 불안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대체로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은 통합의 리더십, 설득과 이해를 구하는 포용의 리더십이다. 확고한 주관과 소신이 있다 해도 자신과 반대 측에 있는 국민들을 배려하고 껴안고 가는 모습을 대통령은 보여줘야 한다. 설득이 힘들면 반대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런 부분까지 감안하고 챙기려 하는 섬세한 모습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구현됐을 때 비로소 발언에 무게와 감동이 얹히고 국민의 이해와 신뢰가 쌓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간결하고 단호한 스피치가 인상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핵심 내용을 압축된 단어로 힘있게 전달하는 것을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한치의 어긋남 없이 또박또박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박 대통령의 모습에서 그가 빈 틈 없는 완벽한 리더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모든 것이 철두철미한 완벽한 지도자는 박 대통령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가치이겠지만 그로 인해 박 대통령을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지도자로서의 단호함은 필요하지만 그 단호함이 빈번하고 강렬할수록 거북함도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통 부족 이미지까지 더해져 박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지 않는 국민 간 정서적 간극은 크게 벌어진 상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서부터 최근 정치권을 강타한 ‘진실한 사람 선택론’까지, 박 대통령은 대단히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레토릭을 구사하고 있다. 반대 진영의 입장에 대한 배려나 공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오직 피아(彼我) 구분만 존재한다.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이들은 극복의 대상이지 이해나 배려의 대상이 아니다. 심지어 여당 내에서조차 ‘친박ㆍ비박’을 넘어 ‘진박ㆍ가박’이라는 새 이분법까지 등장했다.

박 대통령이 왜 ‘역사 전쟁’을 하는지, 왜 ‘배신’‘진실’같은 말로 여권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소명과 정치적 노림수를 백번 감안해도 왜 그의 발언에는 다름에 대한 인정과 이해, 사회 통합과 갈등 중재를 위한 최고 리더로서의 레토릭이 없는지 답답하다. 분열과 갈등의 레토릭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순 있겠지만 통합과 치유의 리더십을 요구하는 시대 정신과는 부합하지 않음을 박 대통령이 알았으면 좋겠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