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자들을 바라보고 중국에 들어왔는데, 더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접경지역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한계상황에 직면했다고 호소했다. 최근 10년 사이 중국의 최저임금이 3배 가까이 올라 수익을 내기 어려워진 데다 정부의 5ㆍ24 조치로 우리 기업이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단둥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북한 노동자의 노무비용은 1인당 1,800~2,100위안으로 중국의 3분의1 수준이지만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단둥에는 북한 노동자가 3만명 가까이 나와 있다. “교민이 3,000명 가까이 됐지만 지금은 800명만 남았다. 북한 노동자를 쓰는 중국업체와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잘 나가던 아웃도어 의류업체도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 베트남으로 다 빠져나갔다.” 브로커에게 뒷돈을 주는 편법으로 북한 노동자를 활용하는 기업들까지 생겨났지만 ‘언 발의 오줌 누기’ 이상이 될 수 없다고 한다.
북한 중국 러시아 접경지역인 훈춘 기류도 비슷했다. 중국이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을 통해 인프라 확충과 물류단지 조성 등 천지개벽 수준의 개발을 이어가고 있고, 러시아도 연해주 자유항 지정 등으로 극동지역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책의 불확실성 등 북한 리스크가 크긴 하지만 중국, 러시아는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를 높이 평가해 북ㆍ중ㆍ러 삼각지대라는 거대한 판으로 끌어들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북ㆍ중 교역을 늘리기 위한 신두만강대교 건설이 한창이고, 러시아는 나진~하산 도로건설을 북한과 논의하고 있다. 중국의 고속철도는 신의주와 청진 블라디보스토크로 뻗어 나갈 준비를 마쳤다. 지난달 러시아 극동개발부 알렉산드르 갈루슈카 장관 및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잇따라 방북한 것도 머뭇거리는 북한을 설득해 더 많은 협력과 개방을 얻어내기 위함이다.
중국, 러시아의 주도로 두만ㆍ압록강 접경이 급변하는데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우리 정부의 북방정책은 원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래를 내다 본 실천 방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정치ㆍ경제적으로 국익이 손상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단둥에서 만난 기업인이 술잔을 기울이며 체념하듯 한 말이 생각난다. “중국이 접경지역 개발을 통해 북한을 협력의 장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만큼 우리도 이 지역에서 북한 대응에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정치인과 정부 당국자에게 수십 차례 호소했지만 고개만 끄덕일 뿐 바뀌는 게 별로 없다.” 정부도 이제 서울과 평양 중심의 단선적인 교류보다는 긴장과 대결의 상징이었던 북방 접경지역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글 싣는 순서]심층기획 ‘개발 열풍, 북ㆍ중ㆍ러 접경을 가다’
<1>천지개벽하는 압록ㆍ두만강변
<2>100년 만의 부활 꿈꾸는 연해주
<3>대륙의 꼬리가 동북아 물류중심으로
<4>긴장과 기대 교차하는 두만강
<5>열리지 않은 희망다리, 신압록강대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