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장중한 소설에서, 광기(狂氣)는 구원을 향한 인간의 숭고한 염원을 느닷없이 미궁에 빠뜨리는 수수께끼 같은 현상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광기의 순간은 마치 인간성의 어두운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악령의 장난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뇌과학은 오랫동안 윤리나 심리, 또는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풀어보려던 인간행동의 불가해성을 간명한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바꿔 버린다. 뇌의 비정상이 광기나 범죄와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 뇌과학 발전 이전에도 생태가 범죄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은 널리 존재했다. 외모로 인간의 품성과 운명을 판단하는 관상학이 동양에서만 발전한 건 아니다. 프랑스의 바르텔레미 코클레는 1533년에 쓴 저서 <관상학자>를 통해 사람의 이마나 입, 눈, 치아 같은 외모의 특성으로 정신과 행동을 분석할 수 있다고 봤다. 이탈리아 의사 체자레 롬브로소(1836~1909)는 수많은 범죄자들에 대한 관찰과 해부를 통해 그들의 두개골 구조가 설치류와 비슷하다고 주장, 골상학이라는 새 분야를 열기도 했다.
▦ 인간 생태와 범죄 간의 상관성을 경험적 사례에 의거해 분석한다는 점에서 뇌과학 역시 접근법은 관상학이나 골상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20세기 후반 이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이나 양전자단층촬영(PET) 등의 발전에 따라 뇌의 외과적 특성 및 피질의 변화까지 정확하게 포착해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진보인 셈이다. 지금까지 정설화한 뇌의 이상과 범죄와의 상관성은 ‘전두엽 손상은 공격적이고 반사회적 행위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거나, ‘측두엽 색질 결여나 종양 등도 잔혹 범죄와 상관성이 있다’는 정도다.
▦ 한편 뇌과학적 접근은 범죄 행사책임의 한계를 둘러싼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미국에선 뇌과학적 증거를 통해 범인의 책임능력을 부정하는 변론의 영향으로 배심원들이 감형에 나서는 사례가 속출해 문제시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요새는 범인의 뇌상태가 비정상이어도 그게 범죄와 직결됐다는 입증이 요구되는 추세다. 최근 국내 법원도 ‘뇌를 다쳐 충동조절에 영향이 있다’는 변론을 수용해 동거녀 토막살인범 박춘풍 등 살인범 2명의 뇌영상을 처음으로 재판에 참고키로 했다고 한다. 재판의 귀추가 주목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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