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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안갈래” 아들내미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입력
2015.11.1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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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어린이집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언제부턴가 온갖 떼를 다 쓰면서 평온한 아침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문밖으로 마중 나온 담임 선생님한테 달려가 폭 안기는가 하면, 집에 돌아와서는 낮 동안 일에 대해서도 시끄럽게 떠들길래 ‘우리 아들, 이제 다(?) 컸구나’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마다 어린이집 등원을 돕는 아이돌보미 선생님이 며칠 안 오시던 때, 그러니까 이 아빠가 출근하는 길에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 날 그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

“아빠 바지 벗겨요(벗어요)~.”

아들의 본격적인 등원 거부 시위는 옷을 갈아 입는 순간 시작됐다. 출근을 위해 옷을 챙겨 입자 아들은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바지를 벗기려고 했다. “안아 주세요~.” 더 센 힘으로 바지를 끌어올려 허리띠 버클을 채운 뒤 재킷을 걸치자 이젠 안아 달라며 울었다(이렇게 다리에 매달려 우는 아들을 보고 있는 것만큼 고역인 것도 없는 것 같다). 결국 웃옷을 입고 안아 든 뒤에야 아들은 울음을 그쳤다.

어린이집에서 자신의 신발을 직접 벗어 제 자리에 놓을 정도로 큰 아들. 이런 모습들에 이 아빠는 살짝 긴장을 풀었다가 아들한테 된통 당했다.
어린이집에서 자신의 신발을 직접 벗어 제 자리에 놓을 정도로 큰 아들. 이런 모습들에 이 아빠는 살짝 긴장을 풀었다가 아들한테 된통 당했다.

울음이 잦아들었다고 끝난 게 아니다. “마트 갈~래….”(이놈아, 아침부터 마트는 무슨 마트!?) “놀이터 갈~래~요….”(그래, 어린이집 옆 놀이터 가서 그네 한번 타자!!) 아들을 안고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 아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말을 총동원해 딴청을 피운다. 여기 저기 가고 싶다는 이야긴데, 결국 어린이집에 가기 싫으니 딴 데 가자는 소리다.

‘00(아들)가 어린이집에 가야 아빠가 회사 가서 일을 하지’, ‘아빠가 출근해야 또 주말에 신나게 놀지’ (상황별 레퍼토리가 있다) 등등 아들을 꼬드겨보지만 안 통한다. “00(친구A)가 뺏아요”, “00(친구B)가 꼬집어요”, “00(친구C)가 때려요”…. 또 아들은 진위가 확인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등원을 거부한다. 이 아침 드라마는 결국‘비극적인(?) 장면’을 끝으로 막 내린다.

놀이공원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탈것에 몸을 싣고 즐거워하는 아빠. 아들이 공포에 떨어 아쉽긴 했지만, 요즘 아들 덕분에 이런 것도 다 타고 있다.
놀이공원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탈것에 몸을 싣고 즐거워하는 아빠. 아들이 공포에 떨어 아쉽긴 했지만, 요즘 아들 덕분에 이런 것도 다 타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잘 먹고 잘 놀고 낮잠까지 끝내주게 잔 뒤 웃으며 하원하는 녀석이 아침에는 왜 이러는 것일까. 이틀 연속 아침에 그 난리를 치르고 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다른 집은 어떨까. 가깝게 지내는 아기 엄마 아빠들에게 물었더니, 비슷한 답들이 돌아왔다.

“엄마 아빠가 집에서 너무 잘 놀아주는 거 아녜요?”

“엄마 아빠랑 나가면 새롭고 넒은 데 가는데, 그 좁은 어린이집에 맨날 가고 싶겠어요?”

이 이야기를 듣자 누가 몽둥이로 머리를 후려치는 것 같았다. 이 아빠는 육아에 쩔쩔매는 친구들을 향해 ‘육아의 8할은 아이와 노는 것’이라고 떠들어 댔는데, 그게 부메랑이 돼 이런 부작용(?)으로 나타나다니…. ‘네…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네요.’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답을 하면서 속으로는 혼란스러웠다. 모순 아닌 모순에 빠지게 되면서 지금까지 ‘헛육아’했나 싶은 생각에 괴롭기까지 했다. (관련 칼럼 ▶ 육아휴직 계획한 아빠를 위한 꿀팁 7가지)

못 놀아주면 못 놀아줘서, 잘 놀아주면 또 잘 놀아줘서 문제가 생기니…. ‘애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고작 27개월 키워 놓고 이런 소릴 할 줄이야!) 한숨밖에 안 나왔다. 막막하고 답답하고 갑갑했다. 이 아빠는 애들 어느 정도 키워놓은 집을 다시 보기 시작했고, 한편으론 애가 아예 없는 딩크족들이 부러웠다. 아들이 세상에 나오기 전, 자유인(?)으로 살던 시절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실제로 아들이 없던 시절, 우리 부부의 일상은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우리는 북적대는 인파를 피해 조조영화를 즐겼으며, 200㎞도 더 떨어진 전주 한옥마을 인근의 한 콩나물국밥집을 향해 한 밤중에 핸들을 잡기도 했고, 휴가 때는 둘이서 지구를 누비고 다녔다. 지금은 감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니, 어떤 의미에서는 아들이 생긴 뒤의 삶은 좀 팍팍해진 셈이다.

역시 아들보다 아빠가 더 즐거웠던 어린이집 가을 운동회. 하지만 이틀 정도 온 몸이 쑤셨다.
역시 아들보다 아빠가 더 즐거웠던 어린이집 가을 운동회. 하지만 이틀 정도 온 몸이 쑤셨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대목에 이율배반적인 구석도 있다.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그래서 분명 더 힘들고 팍팍해졌지만 ‘재미’는 있다는 것이다. 등장인물이 딱 두 사람인 드라마보다 세 명이 나오는 연극이 더 재미있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둘, 셋 낳아 판을 키우는 모습들을 보면서 ‘육아의 즐거움이 육아의 고통을 상쇄하고도 약간은 남는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빠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아들을 떼놓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길.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상상해본다. 아들놈은 학교도 가기 싫어할 것이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느라 가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전화를 받고 학교나 경찰서에도 이 아빠가 갈 일이 있을 것이고, 아들놈이 다 컸어도 이 아빠가 잠 못 이루는 날들은 숱하게 있을 것이다. 어린이집 등원 거부 시위는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이 아빠도 ‘아름다웠노라’ 말할 ‘소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생각도 든다.

정민승기자 msj@hankookilbo.com

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 시리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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