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역사교과서에는 정주영, 이병철 같이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에서 훌륭한 업적을 이룬 분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집필자들이)근ㆍ현대사를 투쟁의 역사로 보려는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ROTC중앙회 주최 ‘제7회 ROTC 나라사랑조찬포럼’에서 이 같이 말했다. 현 검ㆍ인정 교과서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이룩한 경제적 성과 보다는 독재정권과 그에 맞선 노동ㆍ인권운동을 기술하는 데 무게를 둬, 고도성장을 견인한 대기업과 기업가들의 역할을 축소 또는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날 그는 “오늘의 경제를 실감나게 보여주기 위해 경제학자를 필진으로 참여시킬 계획”이라며 향후 국정교과서의 서술 방향을 예고했다.
정부ㆍ여당은 현 교과서가 현대사를 정의롭지 못한 역사로 묘사하고 있다고 본다. 전후 정부 주도로 경제개발을 추진해 수십 년 만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함께 이뤘음에도 정경유착, 기업의 노동탄압, 인권유린 등 그늘만 부각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86), ‘새마을운동’(1970년) 등 정책과 이를 바탕으로 이뤄낸 ‘수출 1억불 달성’(1964년), ‘경부고속도로 건설’(1971년) 등 과실이 온전히 기술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교과서를 살펴보면 박정희 정부 기간 경제성장은 현대사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있고 이 시기 공과를 충분히 서술하고 있다. 일선 학교에서 가장 많이 채택된 미래엔 교과서는 ‘고도성장과 사회ㆍ문화의 변화’라는 단원에서 ‘한강의 기적’의 원동력으로 기업인의 노력과 함께 외채상환 부담을 소개하고 있다. 좌편향 서술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동아출판사의 경우,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다’란 단원에서 연도별 경제성장률 및 수출 증가 추이를 ‘사회ㆍ문화가 변하다’란 단원에선 도시빈민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성공과 번영의 역사’를 강조하고 경제분야 집필진을 참여시킨다는 최근 정부 방침을 감안하면 국정교과서에는 각종 경제정책과 경제인의 역할에 대한 비중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15 개정 교육과정’에는 주요 학습요소로 ‘경제개발 5개년계획’, ‘새마을운동’, ‘중화학 공업화 정책’, ‘중동건설’, ‘OECD가입’ 등을 거론하고 있다. 물론 ‘외환위기 극복’, ‘전태일 분신사건’ 등 압축성장의 그늘과 관련된 부분도 포함돼 있지만 구색맞추기 식 언급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보수세력은 전태일 열사가 우리나라 노동관련 법ㆍ제도 개선을 이끈 상징적 존재라는 점을 최대한 축소하려 하고 있다”며 “정부, 기업과 함께 경제의 한 축인 노동자와 관련한 언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개발과정의 부작용이 담긴 ‘양극화’ 등 필수 용어들이 이달 말 나올 편찬준거에서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현 교과서가 경제발전을 반노동자적으로 묘사하는 등 반기업 정서를 유발하고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고려하면 개연성이 높다”며 “역사의 공과를 함께 봐야 교훈을 얻고 발전된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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