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10시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 앞. 기자회견을 하기로 한 ‘전국복지수호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관계자 10여명은 회견을 시작하지 못했다. 비장애인 관계자는 모두 도착했는데, 공대위 소속 장애인 10명은 회견 장소에 한 명도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시25분이 돼서야 1급 장애인인 김재익(51) 굿잡자립생활센터 소장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나타났다. 지친 표정의 김 소장이 전한 얘기는 이랬다. 김 소장은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9시40분쯤 경복궁사거리 동십자각에서 삼청동으로 진입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콜택시의 진입을 막았다. 이에 콜택시에서 내려 휠체어로 가려고 했더니 또 저지했다.
어떤 경찰은 “불법 기자회견이니까 가지 말라, 집으로 돌아가라”며 앞을 가로 막았고, 다른 경찰은 “기자회견 장소가 다른 데로 바뀔 것이니까 여기로 가지 말라”고 했다. 동십자각에서 총리 공관 앞까지 약 900m를 오면서 경찰에게 다섯 번이나 붙잡혔고, 막아서는 경찰과의 충돌로 휠체어 손잡이 등이 부러지기도 했다. 비장애인인 공대위 관계자가 경찰에게 항의를 한 후에야 김 소장과 다른 장애인 6명은 공관 앞으로 올 수 있었다.
기자회견이 모두 끝난 10시50분쯤 휠체어를 탄 다른 장애인 4명이 더 왔다. 이들은 한 시간 넘게 경찰에게 붙들려 있었다. 김명학(58)씨는 “경찰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계속 막았고, 통행 막는 것에 항의하다가 손톱이 뒤집혔다”며 씁쓸해했다. 김씨의 오른손 중지 손톱 밑에는 빨갛게 피가 배어 있었다.
사유지나 접근 금지구역이 아닌 이상 서울 시내 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모든 시민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그런데 경찰은 무슨 근거로 장애인을 막았을까. 경비를 지휘한 서울 종로경찰서 경비과 관계자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상 총리 공관 100m 내에서는 집회를 할 수 없는데, 장애인들이 오면 구호 외치고 도로 점거하고 그래서 사전에 차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대위가 여는 것은 집회ㆍ시위가 아니라 신고 없이도 어디서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자회견’이며, 도로점거를 한 것도 아닌데 “할 것 같다”는 추측만으로도 시민의 통행을 막을 수도 있는 걸까.
법적 근거를 묻자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조 7호(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와 제6조(범죄의 예방과 제지)를 들었다. 하지만 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법 조문을 근거로 떳떳하고 당당하게 공권력을 행사했다고 믿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경찰은 이날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정당한 공무 집행이었다면 김재익 소장에게 ‘불법 기자회견’ ‘집회 장소가 바뀔 것’이라며 사실과 다른 정보를 줄 이유가 없다. 또 경비과 관계자는 기자가 전화로 “왜 장애인들을 막은 것이냐”고 묻자 “다 와서 기자회견을 하고 갔다”고 답했다. 기자가 “장애인들이 기자회견에 늦거나 끝난 뒤에 온 것을 현장에서 다 지켜봤다”고 반문하자 “아마 휠체어 타고 오니까 늦지 않았나 싶다”며 막았다는 사실은 부인했다. 경찰이 막았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자 그제서야 기자회견과는 상관없는 집시법 얘기만 반복했다.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기자회견인데 장애인만 막는 것은 차별이 아니냐고 묻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가지 더. 이 장애인들은 이날 구호를 외치거나 도로를 불법 점거하지 않았고, 기자회견은 평화롭게 끝났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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