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방어 전투서 다리에 화상… 홀로 귀국에 늘 미안함 느껴
전통의상에 부친 베레모 쓴 아들 “아버지 유언 지킬 수 있게 돼 감사”
11월11일 오전 11시 ‘턴 투워드 부산’ 참전용사 등 1000여명 추모
11일 오전 11시 부산 남구 대연4동 유엔기념공원. ‘앵~’하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캐나다인 6·25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 씨를 비롯한 유엔군 참전용사, 시민, 학생, 군인 등 1,000여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11개국의 유엔군 전사자들에게 묵념했다.
이 행사의 이름은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ㆍ부산을 향하여)’. 전세계에 거주하는 6ㆍ25참전 용사들이 매년 11월11일 오전 11시에 부산을 향해 1분간 묵념하는 추모행사로, 빈센트씨의 제안으로 2007년 시작돼 매년 빠지지 않고 열리고 있다.
수년째 이어오는 행사지만 이날은 영국군 참전용사 고(故) 로버트 맥코터씨 안장식이 함께 열려 의미를 더했다.
맥코터씨는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당시 홍콩의 영국군 부대 소속이었으나 참전을 자원해 영국군 ‘아가일 앤드 서덜랜드 하이랜더스’ 부대원으로 한국에 왔다. 이 부대는 영국이 6·25 전쟁에 파병한 첫 부대다.
그는 같은 해 9월 낙동강 방어 전투에서 적의 고지를 공격하던 중 한쪽 다리에 화상을 입어 일본으로 후송됐다. 6주 동안 입원 치료를 받고 다시 전장으로 돌아와 헌신적으로 싸웠고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52년 8월 고국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맥코터씨는 전쟁터에 전우를 남겨두고 홀로 떠났다는 죄책감이 늘 남아있었다. 이후 전우들이 묻힌 한국을 다시 방문하길 무던히 애를 썼지만 결국 건강 문제로 좌절됐다.
2001년 7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도 그는 “전우들이 있는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이때는 부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2년 부인도 타계하자 맥코터씨와 함께 6·25 전쟁에 참가한 형 제임스(90)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맥코터씨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기로 뜻을 모았다.
6·25 전쟁에서 살아남은 참전용사가 사후에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지만, 유엔묘지 국제관리위원회(UNMCK)측도 맥코터씨와 유족들의 완강한 의지에 예외를 인정했다. 이렇게 해서 맥코터 씨는 숨을 거둔지 14년,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돌아간 지 6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6·25 전쟁에서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간 유엔군 참전용사 가운데 사후 유엔기념공원에 묻히는 것은 맥코터씨가 두 번째지만 우리 정부가 주관하는 공식 유해봉환식과 안장식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에는 프랑스군으로 6·25 전쟁에 참가한 레몽 베르나르씨가 전후 고국에서 살다가 숨을 거둘 때 남긴 유언에 따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묻힌 바 있다.
이날 안장식에는 맥코터씨의 아들 내외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유엔군 참전용사 30여명이 참석했다. 스코틀랜드식 영국 전통의상과 베레모를 착용한 아들 게리 맥코터(52)씨는 묘한 감회에 젖었다. 그는 “아버지를 한국 땅에 남겨두는 대신, 아버지가 남겨둔 유품 베레모는 잊지 않고 간직하겠다”고 했다.
게리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이 옷을 사주셔서 그런지 아버지 생각이 더 많이 난다”면서 “생전에 아버지는 전쟁을 겪은 한국이 짧은 시간 동안 급성장한 것에 기뻐하셨는데 안장을 도와준 한국 정부에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게리씨는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 당시 경북 성주에서 많은 동료를 잃어 거기에 묻히길 원하셨는데 성주에선 마땅한 곳이 없었다”며 “고심 끝에 유엔기념공원 측에서 자리를 마련해줘 아버지 유언을 지킬 수 있게 됐다”면서 감사의 말을 전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최고의 예우로 맥코터씨의 안장식을 진행했다”며 “앞으로도 유엔군 참전용사들이 사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묻히기를 희망할 경우 모든 예우를 다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글ㆍ사진 전혜원기자 iamjh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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