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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시네마니아] 봉준호식 할리우드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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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시네마니아] 봉준호식 할리우드 진출

입력
2015.11.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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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옥자’에 580억원 투자를 받은 봉준호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작 영화 ‘옥자’에 580억원 투자를 받은 봉준호 감독. 한국일보 자료사진

‘에일리언’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할리우드 스타 시고니 위버가 2010년 한국일보 초청으로 서울을 찾았을 때다. 그는 영화 ‘괴물’을 두 번 봤다며 봉준호 감독과의 만남을 희망했다. 봉 감독의 ‘마더’를 매우 보고 싶었으나 DVD를 구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짧은 일정 탓에 둘의 조우는 이뤄지지 않았다. 봉 감독은 ‘마더’ DVD를 보내고 싶다며 위버의 미국 뉴욕 자택 주소를 물었다.

봉 감독에 대한 할리우드의 호감을 단박에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봉 감독이 곧 충무로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 유명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봉 감독은 ‘설국열차’ 안으로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에번스와 영국 유명 배우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등을 모았다.

봉 감독은 신작 ‘옥자’로 세계 영화시장에 더 다가갈 전망이다. 이미 ‘옥자’는 트윈튼과 제이크 질렌할, 빌 나이, 폴 다노 등 여러 별들의 합류 소식을 전하며 화제에 올랐다. 깜짝 소식은 10일에도 이어졌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 주문형비디오(VOD) 회사 넷플릭스가 5,000만달러(580억원)를 투자하고 할리우드 중견 제작사 플랜B엔터테인먼트가 공동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넷플릭스는 전통적인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아니다. 드라마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와 ‘마르코폴로’를 만들며 신흥 영상물 제작회사로 떠올랐다. 기존 방송사와 달리 드라마 전편을 한번에 보여주며 새로운 시청 문화를 선도했다. ‘설국열차’의 미국 개봉을 위해 웨인스테인컴퍼니와 손잡았다가 편집권 갈등을 겪었던 봉 감독에게는 대안이 될만한 회사다. 봉 감독은 “전작 ‘설국열차’보다 더 큰 예산과 완벽한 창작의 자유라는, 동시에 얻기 힘든 두 가지를 넷플릭스가 제공했다”고 밝혔다.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가 전 부인 제니퍼 애니스톤과 공동설립한 플랜B는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 수상작인 ‘디파티드’(2006)와 ‘노예 12년’(2013) 등 많은 화제작을 만들었다. 플랜B가 제작한 ‘트로이’(2004)와 ‘트리 오브 라이프’(2011), ‘머니볼’(2011), ‘킬링 뎀 소프틀리’(2012) ‘월드워Z’(2013) 등에는 피트가 출연하기도 했다. 지난해 ‘퓨리’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던 피트는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노예 12년’처럼 피트가 ‘옥자’에 짧게라도 출연하며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충분하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의해 고용돼 개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감독들이 적지 않다. 봉 감독은 한국에 거점을 두고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독특한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에게 거는 기대가 더 큰 이유다. 한국 영화팬들은 제작자 피트와 봉 감독이 아카데미상 시상식이나 칸영화제 시상대에 함께 오르는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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