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 컸다. 방송사에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MBC 사극 ‘대장금’(2003)과 ‘선덕여왕’의 김영현 작가, SBS ‘뿌리깊은 나무’로 김 작가와 찰떡 호흡을 자랑했던 신경수 PD, 여기에 영화 ‘베테랑’과 ‘사도’의 히로인 유아인까지. SBS 월화극 ‘육룡이 나르샤'(이하 육룡이)는 시작 전부터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총 50부작에 300억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나 한 달이 넘은 이 시점에서 짚어보면 시청률 13.3%(9일 기준, 닐슨코리아)로 10%를 조금 웃돌 뿐이고, 핵심 주연 유아인에 대해선 “과대평가됐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대체 ‘육룡이’의 무엇이 문제인가.
라제기 기자(이하 라)= 드라마 시작 전 불었던 바람이 오히려 방송 이후 잦아들었다.
강은영 기자(이하 강)= 전반적으로 내용이 빈약하다. 스토리보다 ‘육룡’ 즉 6명의 캐릭터를 설명하느라 드라마 초반을 소진했다.
라= 그래서인지 가장 중요한 인물인 이방원(유아인)과 정도전(김명민)보다 오히려 땅새(변요한)가 더 주목 받는다. 호탕하고 야심가로 그려졌던 이방원은 낭만적이고 여린 인물로 나온다.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를 보이는 건 사실인데, 캐릭터만 있다 뿐이지 드라마의 극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강= 지난해 KBS1 정통사극 ‘정도전’이 한 번 훑어 김이 빠진 터라 가상인물들에 무게를 싣는 것 같다. ‘육룡’ 중 이방원 정도전 이성계(천호진)만 실존인물이고, 땅새 분이(신세경) 무휼(윤균상)이 가상인물이다. 그런데 가상인물인 셋이 실존인물보다 더 비중이 있다.
양승준 기자(이하 양)= 드라마가 전반적으로 산만하다. 가령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한석규)이라는 중심 캐릭터가 있었는데, ‘육룡이’는 정도전을 무협인으로 만드는 등 만화적 설정이 두드러진다. 판타지가 가미된 무협 활극으로 변해버린 ‘육룡이’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가 관건이다.
라= ‘뿌리깊은 나무’는 세종의 경쟁심이나 질투 등이 분명하게 드러나 전복성을 보여준다. 그러한 접근은 시청자들이 캐릭터를 더 재미있게 이해하게 한다. 그러나 유아인이 그렇게까지 극을 이끌 수 있는 연기력을 지녔느냐는 의문도 든다. 영화에서의 인기는 그가 과대평가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강= 현재 이야기 구조 상 유아인이 포커스가 아니다. 신세경과 변요한이 중심축을 이루며 민초들의 삶이 거의 극을 주도한다. 김명민도 이제야 본격 등장했다. 유아인이 연기력을 폭발할 만한 상황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조아름 기자(이하 조)= 사극 특유의 카리스마도 없다. 시청자는 사극에서 멜로보다 시대적 메시지를 기대한다. 하지만 ‘육룡이’에는 그런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연기력의 문제인지, 스토리의 문제인지, 하여튼 극적인 카리스마가 실종돼 재미없다.
라= 유아인의 “낭만적이다”라는 대사는 오글거리더라. 지나치게 퓨전화하려는 시도가 반감이 있다. 어벤져스급 제작진과 출연진에 비해 반응이 신통치 않은 건 캐릭터나 내용에 공감이 가지 않아서다.
강= 김 작가와 신 PD, 유아인에 김명민이라는 조합은 20~30% 이상 시청률이 나와야 하는 궁합이다. 심지어 KBS1 ‘정도전’은 총 50부작 제작비가 130억원 정도였다. 300억 제작비의 ‘육룡이’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됐지만 시청률은 20%였다. 퓨전이 아닌 사료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내용이 한 몫 했다는 평가가 많다.
라= 보통 퓨전이라고 하면 중심인물을 다르게 해석하든가, 중심인물을 우직하게 가되 주변인물을 상상으로 그려 허구의 갈등은 만든다. 부각되지 않았던 인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중심인물과 맞서게 하는 식이었는데, ‘육룡이’는 가상인물이 강조되고 중심인물까지 재해석해버려 어렵다.
강= 그간 퓨전이 너무 남발돼 매력이 떨어진 점도 있다. ‘정도전’을 통해 확인됐지만 이제는 정통사극이 더 어필하는 것 같다. 지난해 종영한 MBC ‘기황후’는 시청률은 좋았지만 역사학자나 드라마 제작자 등에게 퓨전사극을 재고의 계기를 주었다. 고려를 괴롭히던 기황후를 고려의 여신으로 만들어버리는 역사왜곡이 심각했다.
라= 퓨전사극 즉 팩션 장르가 10년 넘게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정도전’이나 영화 ‘사도’에서 픽션을 최대한 걷어내고 역사에 가깝게 하며 더 깊은 감동을 줬다. 대중에게 통했다. 그런 점에서 ‘육룡이’가 트렌드를 읽지 못한 부분도 있다.
조= 김 작가의 ‘대장금’이나 ‘선덕여왕’은 작가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드라마다. 당시에는 획기적인 아이템이어서 참신했고 시청자들의 지지도 받았지만, 어느 순간 가상인물과 가상설정에 더 힘이 들어가면서 지루해졌다.
양= 어떤 평론가는 기존과 다른 이방원 캐릭터는 세종이라는 인물에 필연성을 주기 위한 설정이라고 분석했다. ‘육룡이’가 김 작가와 신 PD의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이라고 해서다. 무휼이라는 인물은 ‘뿌리깊은 나무’에도 나온다.
강= 어쩌면 ‘뿌리깊은 나무’에 연관성을 두고 쓰느라 한계를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근거를 두고 캐릭터를 풀어내느라 ‘육룡이’의 스토리가 진척이 안 되는 것이다.
양= 지상파 월화극 대진운은 좋은 편이다. KBS ‘발칙하게 고고’는 3%대, MBC ‘화려한 유혹’은 9%대의 시청률이다. ‘육룡이’가 달아난 시청률을 잡아오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조= 아직 극 초반이니 이제 가상 말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방원과 정도전이 날아오를 때가 됐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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