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가 저에게 한국의 독자들을 꼭 만나보라고 하더군요. 한국 독자들이 당신 책보다 내 책을 더 좋아하게 만들겠다고 했더니 그는 그럼 가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오게 됐죠.”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르메트르(64)가 2013년 공쿠르상 수상작 ‘오르부아르’의 국내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했다. 10일 중구 프랑스문화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평소 친분이 있는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유쾌하게 입을 열었다.
르메트르는 55세의 나이에 첫 소설을 쓴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951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2000년대 중반까지 지역 공무원 등을 상대로 문학 세미나 강좌를 하며 살았다. 처음 발을 디딘 분야는 추리소설로, ‘이렌’ ‘웨딩 드레스’ ‘실업자’ ‘알렉스’ ‘카미유’ 등 발표한 모든 소설이 문학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오르부아르’는 그가 처음 시도한 본격문학. 1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두 청년은 간신히 사회로 복귀하지만 국가와 자본가는 이들을 상대로 착취와 사기를 반복하고, 청년들은 통렬한 복수를 꿈꾸기 시작한다. 1차 대전 이후 프랑스 사회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소설은 서스펜스적 요소까지 더해져, 공쿠르상 수상작이 통상 40만부 가량 판매되는 것에 비해 프랑스에서만 100만부나 팔리며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인들에게 1차 대전은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대한 사건입니다. 당시 1평방미터에 6개의 폭탄이 떨어진 적도 있었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 돌아온 젊은이들에게 자본주의 사회가 돌려준 것은 착취뿐이었습니다.”
에두아르와 알베르는 얼굴 반쪽이 날아가는 부상과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고 돌아오지만 국가에게 이들은 처치곤란의 실업자일뿐이다. 폭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존엄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은 100년이 지난 지금, 더 많은 곳에서 더 자주 재연되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저지르는 부조리와 사기는 모든 시대,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국가가 국민을 속이고 희롱하는 부도덕한 스캔들이 일어난 줄 압니다. 독자들이 주인공의 복수극을 신나게 응원하다가도 책을 덮은 뒤에 이 같은 문제들을 한 번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작가는 늦깎이 데뷔라는 말에 “나는 59세에 아이를 낳았다”며 장난스레 반박했다. “55세가 작가를 하기에 왜 늦은 나이입니까? 책을 출간하기 이전에도 저는 늘 작가였어요. 문학을 신성시하는 부모님 덕분에 저는 어릴 때부터 문학과 함께 살았습니다. 다만 책 출간이 남들보다 늦었을 뿐이죠. 저는 지금도 청년들에게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려면 50년 정도 생각해보라고 조언합니다.(웃음)”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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