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국제심판들은 자부심이 대단했어. 한국에서 굉장히 드문 존재였거든. 1983년 슈퍼리그(현재의 K리그)가 출범하면서부턴 심판으로서도 전성기라는 걸 맛봤지. 그런데 1995년에 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덜컥 은퇴하란 통보를 받았는데, 눈 앞이 캄캄한거야. 청춘을 다 바쳤지만 퇴직금은커녕 공식적으로 주는 격려금도 한 푼 없었어. 심판 외에는 할 줄 아는 것도 없었으니 비참하기까지 하더라고. 그 때만 생각하면 참….”
지난달 25일 만난 원로 심판 한운집(69)선생은 은퇴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털어놨다. 그 시대 심판으로선 남 부러울 것 없었지만 은퇴 후의 진로가 마땅치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성공한 심판’의 인생 2막에도 잔잔한 변화의 물결이 감지된다. 심판 시절 쌓은 국제적 경험 등을 토대로 축구계 곳곳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행정인들이 늘고 있다.
행정인·사업가 넘나든 심판계‘커리어 왕’
권종철(52) 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은 심판계 인사 중 가장 ‘성공한 심판’으로 손꼽힌다. 1989년 심판에 입문한 그는 2007년 은퇴 때까지 심판으로서 이룰 수 있는 커리어를 대부분 이뤄냈다. 1995년 국제심판으로 데뷔한 그는 2005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등 각종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를 비롯, 두 차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주심에 배정되며 명성을 쌓았다.
현역 은퇴 후에는 축구 행정가로도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2008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수석 심판강사 겸 심판위원을 맡았고, 2009년부터 심판부위원장을 맡은 뒤 2010년부터 2013년 3월까지 심판위원장을 역임했다.
국제무대 활약도 왕성했다. AFC 심판위원·심판강사·심판감독관·미디어분석관을 두루 거친 그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FIFA 심판감독관으로 아시아지역에서 열리는 A매치에 참가하고 있다. 지난 2010년 한국 심판으로는 30여 년 만에 FIFA 특별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한 현역 국제심판은 “국제심판에 대한 지원이 열악했던 점을 감안하면 권 전 위원장은 현역 당시 거의 홀로 불모지를 개척해온 셈”이라고 말했다.
40대 후반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심판위원장을 맡았던 권 전 위원장은 “현역 심판 때 국내외에서 쌓은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됐었다”며 “월드컵 주심 배출을 위한 기틀을 마련한 점은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심판 후배들이 국제심판 은퇴 후 겪는 생활고에 대한 보완책을 내놓지 못한 점은 지금도 아쉽다고 했다. 그는 “국제심판에 오르기 위해서는 직업 등 심판 개인의 희생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은퇴 후의 복지정책 등은 전무한 게 사실”이라며 “이런 구조적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2013년 3월 심판위원장을 그만 둔 뒤부터는 기존에 해왔던 스포츠 유통업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수익의 일부는 축구계에 환원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초의 여자국제심판, 최초의 여성CEO로
임은주(49) 강원FC 대표이사도 심판 은퇴 후 축구행정인 등으로 꾸준히 활동해 왔다. 1998년 한국 여성 최초의 국제심판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최초’라는 수식어는 더 있다. 심판을 시작하기 전인 1993년 한국 최초의 여자 대학팀(이화여대) 감독이 됐고, 지난 2007년 아시아 여성 최초의 FIFA 심판강사가 됐다. 2013년엔 강원FC 대표이사를 맡으며 K리그 최초의 여성CEO로 이름을 올렸다.
임 대표는 “현재의 위치는 심판을 포함한 모든 경험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그는 앞서 언급한 심판, 지도자, 강사 외에도 행정인(한국실업축구연맹 이사 등), 교수(순천향대·을지대 등), 마케팅(현대자동차), 축구해설위원(MBC)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심판 출신으로 구단을 운영하는 데 힘든 점은 없는지 묻자 “심판 활동만 했었다면 당연히 힘들었을 것”이라면서도 “심판 활동을 통해 규범 아래 생활해 온 습관이 몸에 밴 점은 보다 정직하고 투명한 행정을 하는 데 큰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후배들의 저승사자 된 선비
그런가 하면 ‘선의의 악역’을 맡은 은퇴 심판도 있다. 프로축구연맹 강창구(50·2007년 은퇴) 심판위원은 4년 전부터 K리그 무대에서 벌어지는 후배들의 실수를 빠짐없이 잡아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간 심판들 사이에선 선비라 불렸지만 이젠 저승사자로 통한다.
강 위원을 포함한 6명의 심판위원은 각 라운드 경기가 끝난 다음날부턴 모든 경기의 비디오를 쉴 틈 없이 돌려가며 판정 분석에 들어간다. 논란이 된 오심부터 심판이 경기 중 잡아내지 못한 장면까지도 집어내 심판 또는 선수에 사후 징계를 내린다. 물론 잡아내기 어려운 장면을 잡아낸 판정 사례도 차곡차곡 쌓아 심판 평가에 반영한다.
문제가 생긴 장면에 대해 심판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 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는 강 위원은 “후배들에게 원망을 살 때도 많지만 심판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세 명의 은퇴 심판들은 모두 “심판들이 은퇴 후의 생활도 고려해가며 자신만의 분야를 갖춰갈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여느 축구인과 마찬가지로 퇴직금도, 연금도 없는 구조 속에서 은퇴 후 진출할 수 있는 진로가 여전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권 전 위원장은 “행정적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우선 심판 개개인이 은퇴 후를 고민해야 한다. 외국어 등을 연마하며 제 2의 전문분야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임 대표 역시 “고생스럽더라도 심판 활동을 하며 다양한 활동을 겸한다면 언젠간 자신만의 무형적 자산으로 남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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