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학제 개편 추진
초중고 과정도 1년 단축
9월 가을 학기제 도입도 추진
막대한 예산이 최대 걸림돌
교육적 영향 검토 없다는 비판도
지난달 21일 새누리당이 보건복지부와 당정협의회에서 초등학교와 중ㆍ고교 재학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학제 개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고, 12년인 학제 기간도 1년 단축 시킬 것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찬성론자들은 이른 취학과 이른 졸업으로 취업연령을 낮추면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도 개편에 필요한 비용과 야기될 혼란을 감안하면 제도 개편으로 이익보다는 손해가 클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 내에서도 부처별로 입장이 다소 엇갈리는 실정이다.
정권마다 꺼내 드는‘학제 개편’카드
학제 개편 논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현행‘6(초등)-3(중등)-3(고등)-4(대학)제도’는 1951년 처음 도입됐는데 이후 크고 작은 개편 시도가 있었다. 1980년대까지는 사회적 수요변화에 맞춰 직업기술교육 학교 신설, 특수목적형고교 신설, 평생 프로그램 신설 등 큰 틀을 흔들지 않는 선에서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전문가들 사이에서 현행 제도는 아동의 발육 속도,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세계화 등 교육 내외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만큼 기존 학제를 근본적으로 손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정부도 정책적 검토에 들어갔다. 노무현정부가 2007년 내놓은 ‘비전 2030 2+5전략’이 대표적이다.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취직연령을 2년 앞당기고 퇴직연령은 5년 높이자는 내용으로, 이때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5세로 낮추는 안이 제시됐다. 2009년 이명박정부 때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면 저출산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학제 개편 논의의 불씨를 살렸지만 정책 의제로 발전되지는 못했다. 막대한 재정투입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박근혜 정부도 학제개편 아이디어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정부의 공식입장은 나와 있지 않다. 학제 개편의 실무부처인 교육부는 “구체적인 검토가 없으며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인 반면 저출산 문제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일자리 갖는 나이가 늦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학제 개편은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학제 개편 핵심은 취학 연령 낮추기
지금껏 거론됐던 학제 개편과 관련된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취학 연령을 만 6세에서 만 5세로 1년 앞당기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아동의 발육이 빨라진 점을 감안해 전체 졸업 연령을 낮추면 늦은 취직, 만혼 등에 기인한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개편론자의 주장이다. 현재 만 5세가 사실상의 의무교육인 ‘누리과정’에 편입돼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달 당정협의회에서도 이 방안이 거론됐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학생들 발육 속도가 달라졌기 때문에 50년 전 학제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취학연령을 앞당기는 대신 초등 저학년의 교육 과정을 놀이 중심으로 재편하면 아동 유아 발달에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중고 과정을 단축시키는 방안도 단골 메뉴다. 당정협의회에서도 현행 6년인 초등학교 과정을 5년으로 줄이거나 각각 3년씩 걸리는 중ㆍ고교 과정을 5년제 통합과정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지난 2006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중점 연구과제 보고서에서도 “16년간 수업 연한이 너무 길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입직(入職ㆍ직업을 가짐) 등 사회 진출이 늦어져 기업 생산성과 국가 경쟁력이 낮아지고 있다”며 “학교 단계별 수업 연한을 조정하는 방안을 비중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3월에 시작하는 학기를 9월로 옮기는 ‘가을학기제’ 도입도 거론된다. 가을학기제 찬성론자들은 한국의 취업 시기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5년 가까이 늦기 때문에 6개월이라도 학업 연령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9월에 새 학년을 시작하는 ‘가을학기제’ 도입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막대한 예산투입이 학제개편 걸림돌
하지만 학제 개편 논의가 번번이 흐지부지돼왔다. 가장 큰 이유는 예산 문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12년 공개한‘9월 신학년제 실행 전략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을학기제 전환에 따른 교육과정 개편에만 적게는 2조 4,855억원(도입 첫해부터 3년간 교육과정을 10개월로 단축)에서 많게는 7조 8,945억원(도입 첫해와 이듬해 교육과정을 기존 12개월에서 15개월로 연장)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밖에도 교원 1인당 학생 수 증가 등에 따른 교사 수급과 학교 시설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학부모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만 5세로 초등학교 입학을 앞당기거나, 현행 6년인 초등학교와 중·고교를 각각 5년 만에 끝낼 경우 제도 도입 전 취학한 아동들보다 수능시험 준비 기간이 그만큼 짧아져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가을학기만 도입하더라도 6개월 간격으로 수능 시험을 두 번 시행해야 하는 등 교육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보육계의 반발도 예상된다. 이명박정부가 취학연령을 1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려 했던 지난 2009년 유아교육과 교원단체들은 “유아들의 학습 경쟁에 대한 우려나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검토 없이 경제적으로만 취학 연령 단축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정부의 학제개편안은) 교육적인 관점이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나온 방안”이라며 “저출산과 취업난이 문제라면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아야지 학제 개편을 도구 삼아 해결하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장승혁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연구원은 “2007년 시뮬레이션을 직접 해보니 취학연령을 1년 당기면 2008~2020년 12년간 45조가 투입되는 것으로 추산됐다”며 “비용 편익이 그만큼 있는지 효과가 불분명하다”고 부정적 의견을 표시했다.
김민정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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