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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길 위의 이야기] 타투

입력
2015.11.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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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를 하고 싶으나 당장 하긴 힘들다고 얼버무린 시간이 꽤 된다. 가장 큰 이유로 드는 게 부모님 시선이다. 누군 잘 안 보이는 부위에 자그맣게 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데, 왠지 성이 안 찬다. 더 크고 화려하게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 역시 때론 변명 같다. 사람들 시선과 편견이 아직 두렵고, 몸에 상처가 나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 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창피해지곤 한다. 요즘은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지만, 타투한 모습을 보고 조폭 따위를 떠올리는 건 아직 교정되지 않은 관성이다. 아무 편견 없다 떠들면서도 내심 길들여진 속단과 오해를 스스로 걸러내지 못해 자중지란에 빠지는 게 나만 그런 건 아니라 본다. 그건 비단 타투 뿐만 아니다. 편견에 은근슬쩍 묻어가는 건 얼마나 안이한 보신주의인가. 언젠가 한 타투이스트를 인터뷰한 적 있다. 여성이었고, 타투를 한다는 이유로 법적인 고초까지 겪고 있던 젊은이였다. 그럼에도 말하는 본새나 결기가 자못 당당하고 명쾌했다. 언뜻 결가부좌한 명상가 같은 느낌도 받았다. 그는 타투를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게 고객과의 상담이라고 했다. 왜 몸에 그림을 그리려 하는지, 고통은 참을 수 있는지 등등. 타투는 한번 하면 영원히 지울 수 없다. 그만큼 강한 확신과 각오에 의해 선택할 일. 용이냐 독수리냐보다 내가 누구냐가 여전히 중요한 문제라 여겼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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