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이다. 부조리한 세계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그리스 비극처럼 예정된 파국에 이르는 인간의 근원적 슬픔을 그리고 있다. 여기까지 소개하면, 이 작품이 익숙하고 뻔한 소설처럼 느껴질 것이다. 독법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다. 줄거리는 단순하고 결말은 짐작이 가능하며, 사랑과 돈과 죽음은 서사의 가장 기초적인 설정이니까.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우리를 경악하게 만드는 것은 새로운 여인의 존재가 아니라 익히 안다고 생각했던 여인의 낯선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마음을 움직인다. 잘 쓴 소설은 자주 만나지만, 마음까지 움직이게 만드는 소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남녀 주인공은 여덟 살 때 동급생으로 만난다. 중고등학생을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 사랑의 감정이 단계별로 변하고 깊어지는 과정이 꽤나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환상이 있을 리 없는데도 애틋하고 간절하다. 간절하나 난폭하다. 타자들의 모함과 배척 때문이다. 난폭하면서도 무력하다. 세상이 틀려먹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 폭력성을 날것으로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감정에 대해서는 섬세하게 파고든다.
여자는 죽은 남자를 곁에 두고 조금씩 먹는다. 폭력 세력이 찾아내 훼손하지 않도록 남자를 자기 안에 넣으려는 것이다. 시작 부분부터 마지막 부분까지 그 ‘먹는 이야기’가 소설을 추동한다. 먹는 행위에 대한 성취감과 후회, 기쁨과 슬픔이 교차된다. 그럼으로써 도덕과 윤리를 규정하는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깎은 손톱과 빠진 머리카락을 삼키는 장면에서 엽기보다는 극진함을 느끼도록 설득할 수 있는 건 아마 문장의 힘일 것이다.
최진영은 극히 쉬운 단어로 씌어진 짧은 문장만으로, 역설로 가득 찬 철학을 담아내고 또 음악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자지’와 ‘씨발’이 자주 나와도 충분히 유려한 문장이다. 함부로 토로하는 것 같지만 섬세하게 정제돼 있다. 차갑고 날카롭고 아름다운 눈의 결정처럼. 그리하여 결말에 이르면 비참한 인생의 구렁텅이에서도 인간이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데에 이윽고 안심이 된다.
할아버지가 죽자 비구니였던 이모가 어린 여자를 부양한다. 공장을 전전하는 이모에게 여자가 묻는다. “이모는 거기서 뭘 만들어?/ 라고 물으면 이모는, /소리를 만들어./라고 대답했다. 스피커를 만든다는 뜻이었다. /이번에는 뭘 만들어?/향기를 만들어./그렇다. 방향제다./이젠 뭘 만들어?/예쁨을 만들어./뭐겠나? 바로 손거울이다. 나는 이 비유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이번에는?/ 어둠을 만들지./전구다.”
그리고 이것은 여자에게 먹혀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간 남자의 독백이다. “죽어서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밖을 봐. 네가 밖을 봐야 나도 밖을 본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살아.”
구는 여주인공 담이 사랑한 남자의 이름이다. 담은 구를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완벽하게 지켜내고자 했다. 이제 구는 충분히 증명되었다.
은희경ㆍ소설가
◆작가 약력
1981년 태어나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팽이’, 장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가 있다. 한겨레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중편 ‘구의 증명’은 사랑하는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겪게 되는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묻는다.
책 속 한 문장
여기 네가 있다.
나는 너와 있는데, 너는 나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네가 여기 없거나 내가 여기 없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 싶다가도, 고통스럽게 나를 뜯어먹는 너를 바라보고 있자니 있고 없음이 뭐 그리 중요한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구의 증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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