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꿈나무 바둑캠프’가 열린 7일 오후 강원 정선군 하이원리조트 마운틴 프라자 무궁화홀. 상대와 마주한 유소년 기사(棋士)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대회 시작 직전만 해도 엄마에게 어리광을 피우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바둑판을 응시하면서 한 수, 한 수를 이어 가는 모습이 프로기사만큼이나 신중하다. 캠프에 참가한 어린이 모두 ‘이기기를 탐하지 말고, 적진에 들어갈 때 여유를 가져라(不得貪勝 入界宜緩)’는 중국 당나라의 바둑 명수 왕적신(王積薪)의 가르침을 몸에 익힌 듯, 침착한 모습이다.
바둑 경력이 5년째인 강원 동해의 청운초교 6학년인 오상진(12)군은 “대회를 앞두고 여러 수를 준비했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오군은 “꼭 이기려 하기 보다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교류전에 임했다”며 “바둑뿐만 아니라 퀴즈와 골프퍼팅, 그리고 우상인 박정환 9단과 박영훈 9단을 직접 볼 수 있어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원주에서 온 곽민호(10)군은 “새로운 상대와 겨뤄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냉정하게 가늠해 볼 수 있었다”며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바둑이 이제는 휴대폰 게임보다 재미있다”고 활짝 웃었다. 부녀 프로기사로 잘 알려진 김성래(52) 5단은 교류전을 둘러보며 바둑 꿈나무들의 묘수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캠프에는 강원 폐광지역 등 전국 유소년 바둑 꿈나무 300여명이 참가해 지역별 교류전과 최강부, 영재부로 나눠 평소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였다. 프로기전 주최 사에서 별도의 예산을 마련해 바둑 꿈나무들을 위한 1박 2일 캠프를 여는 것은 명인전이 유일하다.
특히 이 행사는 상대를 꺾기 위해 경쟁하는 대회가 아니라 바둑을 즐기며 배우는 그야말로 캠프다. 제43기 명인전 4강 진출자로 개막식에 참석한 박영훈(30) 9단과 박정환(23) 9단은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참가자들에게 직접 사인을 해 주면서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캠프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개막식과 교류전에 앞서 개그맨 박준형씨와 최유진 바둑 전문캐스터의 사회로 퀴즈 이벤트와 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해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교류전 다음 날인 8일에는 재난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태백시 365세이프타운과 삼척시 도계읍 하이원 추추파크를 방문해 깊어가는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이번 캠프는 학부모와 현장의 바둑 지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두 아들과 함께 캠프에 참가한 김인숙(41ㆍ여)씨는 “교류전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이 더 차분해진 것 같다”며 “때묻지 않은 강원도의 자연환경을 접해볼 수 있는 체험행사도 즐길 수 있어 의미 있는 캠프였다”고 평가했다. 황보관(46) 강원초등바둑연맹 춘천지부장은 “꿈나무 교류전을 통해 아이들에게도 즐기는 바둑이 진정한 생활체육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바둑을 교육현장에 보다 많이 보급한다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사회적응과 학교폭력 해소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선=글ㆍ사진 박은성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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