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원ㆍ반니 출판사 편집부장
첫 책,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가슴 설렌다. 그 동안 여러 출판사에서 많은 책을 출간해봤으나 한 회사의 첫 책을 만들기는 처음이었다. 독자들에게 과학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린다는 큰 목표만 잡혔을 뿐, 출판사명도 로고도 심지어 인원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기획의 방향을 다져가기를 1년여. 과연 첫 책을 출간이나 할 수나 있을까 걱정을 떨치지 못하던 출근길이었다.
‘과학의 대중화’ 외에 ‘번역 출간’이라는 목표가 더해지면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존과 해외 서평사이트를 뒤지며 독자들에게 과학의 흥미로움, 새로움, 즐거움을 주는 책들을 골랐고 몇몇 권을 계약하기에 이르렀다. 이 중 하나였던 ‘Pieces of Mind’는 당시 한창 인기를 끌던 ‘뇌 과학’을 비교적 쉽게 다룬 책이었다. 저자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마이클 코벌리스. ‘뉴질랜드 지오그래픽’에 연재된 칼럼을 묶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뇌 과학 책과는 달리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경쾌한 글쓰기, 흥미로운 소제목, 꼭지마다 하나의 이슈를 가볍게 다루면서도 저자의 개성 넘치는 주장이 녹아 있었다. 그러나 첫 책으로 낙점할 만큼의 자신감은 없었다.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뉴질랜드 출신의 무명 저자, 미미한 아마존 판매량, 80쪽 내외의 적은 분량 등이 걸림돌이었다.
먼저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고 또 분량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컬러 일러스트를 넣기로 했다. 사이트를 뒤지던 중, 딱 맞을 만한 그림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한 달 만에 완성 그림이 도착했고(마침 작가는 뇌 과학에도 관심이 아주 많았다),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우리의 의도를 100% 구현한 책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이후 이 디자이너와 그림작가를 소개해달라는 문의를 많이도 받았다.
제목은 원제를 직역한 ‘마음의 조각’으로 할까 고민을 많이 했으나 좀 더 친절한 제목을 뽑아보기로 해, ‘뇌, 인간을 읽다’로 결정했다. 아마도 반니에서 나온 30여 권의 책 중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제목이 아닌가 싶다.
1년여 동안 마음을 졸인 것에 대한 보답인지 출간 후 판매는 순풍을 탔고, 한 달이 채 안 되어 2쇄를 찍었다. 과학 독자들과 서점에게도 ‘반니’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반니 출판사의 든든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조만간 과학 도서에서는 쉽지 않다는 1만 부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만약 그때 이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을 첫 책으로 출간했다면 지금의 반니는 어땠을까?
가끔은 생각한다. 그 동안 첫 책의 힘으로 3여 년 동안 지치지 않고 과학책을 만들 수 있었다고. 그렇게, 오늘도 반니의 서른세 번째 도서의 교정지 위를 힘차게 달린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