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킬 서발 저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니킬 서발 지음, 김승진 옮김
이마 발행ㆍ456쪽ㆍ1만8,000원

사무실 풍경은 대부분 비슷하다. 칸막이, 책상, 의자, 서류 뭉치. 꼭 이래야만 할까. 처음부터 이랬을까. 쾌적한 사무실도 있지만 대개는 답답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과 반복적인 업무 때문에 지루하기도 하다. 우리는 왜 칸막이 사무실에 갇히게 됐을까.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는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거기서 벌어지는 사무직 노동의 변천사다. 그 ‘은밀한’ 역사는 산업 구조와 노동 환경의 변화라는 큰 맥락과, 사내 정치니 직장 내 성차별 같은 세밀한 풍경이 맞물려서 형성된 것이다.

사무실 인간, 화이트칼라의 탄생부터 사무실에 여성이 합류하면서 생겨난 혁명적 변화, 사무용 고층 건물의 등장, 사무실 공간 디자인의 역사, 과학적 경영의 이름으로 진행된 사무직 노동의 통제와 관리, 그로 인한 개인의 소외 등 폭넓은 내용을 다루면서도 전혀 지루하거나 산만하지 않은 책이다. 저자는 재치 있으면서 명쾌한 글솜씨에다 영화, 드라마, 만화, 사회학, 여성학, 경영이론, 건축과 디자인의 역사 등 다양한 자료를 매끈하게 끌어들여 흥미로운 진경을 펼쳐 보인다.

여러 회사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사무실인 그리드 70. 미국 미시건주 그랜드래피즈에 있다. 이마 제공

책에 따르면 사무직 노동자가 처음 등장한 19세기 중반만 해도, 이 신종 직업군에 대한 인상은 후줄근했다. “진짜 노동을 하는 진짜 남자“인 육체노동자에 기생해 멋이나 부리고 단조로운 서류 업무만 반복하는 ”소심한“ 사람들로 여겨졌다. 산업이 발달하고 기업이 대형화 조직화하면서 사무직의 위상이 변한다. 육체노동보다 우월하게 보는 인식이 퍼지고, 일터의 핵심 인력으로 부상한다. 공장 노동자들의 거친 파업 대신 자기계발을 통해 지위 상승을 꾀하는 것을 화이트칼라의 윤리로 내면화한다.

노동 조건과 인식이 변함에 따라 사무실 디자인도 달라졌다. 좁고 눅눅한 방에서 고층빌딩의 칸막이 사무실로, 다시 의사 소통과 접촉을 수월하게 하는 개방형 사무실로 모습을 바꿔 왔다. 사무직 노동의 작업 종류 별로 작업 시간을 측정하고 제어해 생산성을 올리려는 경영의 시도는 ‘과학적 경영’의 이름으로, 나중에는 ‘인사 관리’라는 이름으로 촉수를 강화해 왔다. 이 책에는 사무실 공간과 사무용 가구 디자인의 역사도 상세하게 나온다.

1990년대 실리콘밸리의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사무실을 지나 업무 공간으로 변신한 카페나 집, 프리랜서와 작은 기업이 사무 공간을 공유하는 공동 작업공간 등 최근의 경향을 다룬 장은 특히 흥미롭다. 유연 노동, 프리랜서, 재택 근무 같은 근사해 보이는 환경과 조건이 자유와 창조적인 노동의 기반이 되기보다 불안과 고립을 일으키는 등 노동의 현재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도 있다.

계급 환상에 갇힌 화이트칼라. 도판 제공 이마출판사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주제로, 연관된 풍경들을 엮어서 큰 그림을 그려보이는 저자의 솜씨가 뛰어나다. 흥미로운 주제, 신선한 접근, 풍부한 이야기로 재미있는 책을 썼다. 매일 출근하는 사무실에서, 늘 쓰는 책상과 의자에서, 늘 하는 일을 반복하며 무심하게 지낸 사람이라면, 자신이 일하는 공간이 이토록 많은 사연과 역사를 품고 있다는 데 깜짝 놀랄 것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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