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꼬마는 사촌 형의 무등을 타고 쾨쾨한 냄새가 나는 극장에서 '빠삐용'을 봤다. 우리 말도 아닌 대사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공간이 주던 아늑함을 잊지 못했다. 꼬마가 기억하는 극장은 구운 오징어와 쥐포냄새, 담배 연기, 누군가 몰래 배설한 소변의 악취가 뒤엉킨 야릇함이 각인된 공간이었다. 이 소년은 자라서 영화배우가 됐다. 이병헌은 '내부자들'(19일 개봉)의 인터뷰에서 기억을 되새겼다. 이병헌은 '내부자들'에서 복수를 꾀하는 정치 깡패 안상구를 맡았다. 권력의 개가 돼 거친 일을 도맡아왔지만 욕심이 화가 돼 한 손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한 뒤 한 편의 복수극을 계획한다. 이병헌은 '내부자들'을 촬영하며 50억 협박 사건에 휘말려 곤란함을 겪기도 했다.
-안상구 캐릭터의 강렬함이 크다.
"거창하게 비리를 파헤치는 영화를 해야겠다는 의도보다 재미를 봤다. 겉으로는 연예기획사 대표지만 정치 깡패이고 영화광에 패션에 신경쓰는 폼생폼사를 표현했다. 부하의 아내 생일도 챙기고, 여자를 끝까지 걱정하는 등 정이 많은 인간미가 있었다."
-스타일링 등 외적 변화가 크다.
"원작 웹툰에는 센 깡패로만 그려진다. 영화에서는 초반 목베개를 하고 이은하의 '봄비'를 흥얼거리며 밴에서 내려 망치로 사람을 내려치려 할 때 '못이 나왔다'고 농담을 할 때 인물이 잘 표현돼 있다. 우민호 감독이 스타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는데 딱 하나 요청한 게 장발머리였다. '케이프 피어'의 로버트 드니로 사진을 보여주며 되게 센 느낌을 관객들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살도 뺐지만 분장으로 퀭한 느낌을 강조했다."
-사투리도 수준급이던데.
"사투리가 연기보다 힘들었다. 완벽한 남도 말투가 아니라 서울에 오래 살아 표준어와 희석된 느낌이 나왔으면 했다. 제작진 중에 전라도 출신이 있어 도움을 받았다. 어미를 바꿔보거나 요즘 쓰는 단어인지 아닌지 등의 얘기를 주고 받았다."
-패션도 변화무쌍하다.
"3시간 40분짜리 편집본에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더 잘 나와있다. 연예기획사 대표로 관계자들을 만날 때 각이 잡힌 양복 바지가 구겨질까 입지 않고 있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안상구 말고 다른 캐릭터에 욕심이 안 나는지.
"이강희가 되게 매력 있었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지는 인물이다. 여지가 많은 캐릭터인데 백윤식 선배를 통해 어마어마한 인물이 탄생했다. 조승우의 우장훈 검사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영화를 보니 작품 선택의 기준이 가장 궁금하다.
"늘상 선택하는 기준은 재미가 있나, 없나다. 어떤 역할을, 어느 순간을 보는게 아니라 작품의 재미다. 역할이 아쉬워도 재미있으면 참여하고 싶다. 안상구 같은 캐릭터는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배우가 즐길 수도 있다."
-오른손을 잃고 어설프게 왼손으로 봉지라면을 먹는 장면은 찡했다.
"라면 한 젓가락, 소주 한 잔, 담배 한 모금은 상구에게 있어 골든타임이기도 하다.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관객들은 매우 처량하게 볼테지만. 라면이 뜨거워 뱉는 모습은 애드리브인데 웃겨서 5번이나 NG를 냈다. 반면 제작진은 시큰둥했다(웃음)."
-이병헌에게 골든타임은 언제인가.
맥주 보며 영화를 볼 때.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시간이다. 영화와 극장은 상상과 공상을 꿈꾸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릴 때 극장 안에만 있으면 딴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승우와의 남남케미도 좋다.
"개인적으로, 작업도 모두 처음인데 둘이 주고 받는 합이 좋았다. 애드리브를 던지면 받아치는 리액션이 적절했다. 순발력이 대단한 배우다."
-후속이나 스핀오프를 기대하게 되는 영화다.
"개봉편에는 나오지 않는데 3시간 40분 버전에는 캐릭터를 입체적이고 극대화해주는 장치들이 많다. 안상구가 연예기획사 대표로 어떻게 사람을 대하는지, 옛날에 정치깡패로 어떻게 활약했는지가 담겨있다. 사실 맨 첫 신을 읽고 작품을 선택했는데 영화광인 캐릭터의 모습과 복수를 하려는지 설명이 돼 있다."
-언론 접촉이 부담이 되지 않았나.
"영화는 나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 제작진과 다른 배우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인터뷰는 영화를 끝낸 배우로서의 의무다. 다만 앞서 '협녀'와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물리적으로 일정이 안되기도 했다."
-25년째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네 살 때 처음 극장에 간 뒤 영화를 보며 컸다. 고등학생 때 막연히 감독이든 영화와 관련한 직업을 갖고 싶다고 꿈꿨다. 배우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진부한 대답일 수 밖에 없는데 사람이든 배우든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싶다. 힘이 되는데까지 (연기를) 하겠다."
사진=쇼박스 제공
이현아 기자 lalala@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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