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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세상을 말끔하게, 안경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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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연 세상을 말끔하게, 안경이 필요해!

입력
2015.11.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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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알이 두 개인 건 왼쪽과 오른쪽, 나와 타자를 모두 바라보라는 의미일 테다. 게티이미지뱅크
안경알이 두 개인 건 왼쪽과 오른쪽, 나와 타자를 모두 바라보라는 의미일 테다. 게티이미지뱅크

안경테를 하나 샀다. 이 안경테라는 게 은근히 요물이다. 어떤 것을 고르는가에 따라 얼굴 인상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경을 아이웨어(Eyewear)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눈을 위한 옷이다. 우리가 옷을 고를 때 색과 소재의 재질감, 내 몸과 실루엣이 어울리는지 평가하듯, 안경테도 그렇게 골라야 한다. 안경테는 시각보정 기능을 넘어 인간의 얼굴에 선과 응축된 감정을 그리는 붓이다. 이 선은 기존 얼굴형태가 가진 단점을 가려주고 새로운 느낌을 창조해낸다. 안경테만큼 얼굴선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도 없다.

테를 선택하는 기준은 얼굴형과 타인들에게 보이는 느낌이다. 안경테의 형태와 더불어 소재도 중요하다. 금, 은, 철과 같은 금속 프레임은 예리한 인상을, 뿔 프레임은 지적이고 온화한 느낌을 발산한다. 안경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는 안경다리, 코 걸침 부분, 테, 코걸이, 귀 걸침 부분이다. 안경은 두 개의 창을 코 부위를 다리 삼아 두 다리로 연결한 세계다. 안경은 흐릿한 세상에서 선명하고 밝은 세상으로 넘어가는 다리다. 밝음을 의미하는 한자의 명(明)은 그저 해와 달빛의 결합이 가져다 주는 효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해와 달은 한 자리에 함께할 수 없는 대립적인 세계다. 우리의 시각은 이분법적인 두 세계를 동시에 포용할 때, ‘밝음’의 상태가 된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프랑스어로 안경(lunettes)의 어원은 달(Lune)과 의미상 연결된다. 달과 렌즈의 형태를 달처럼 둥근 것으로 상정한 것인데, 원은 왕권을 상징하는 반지와 더불어, 권력의 정점을 상징한다. 안경은 인간의 시각이 갖추어야 할 지향점을 보여준다. 안경이 두 개의 창으로 구성된 이유는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보라는 뜻이다. 여기에 두 알을 받치고 있는 안경다리는 튼튼하되 귀 부위를 부드럽게 안으며 휘어있다. 중심을 지키되 유연한 생각을 하라는 명령 같다. 역시 생각이 경직되지 않으려면 두 귀로 잘 들어야 한다. ‘색안경을 쓰고 보다’라는 표현을 생각해보라. 이 말에는 우리가 사물과 인간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학습된 편견’을 갖고 보기 쉽다는 뜻이 담겨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엔 다양한 안경을 쓰고 사는 족속으로 가득하다. 안경은 곧 문제해결을 위한 이념의 틀이 되며, 진보와 보수의 시선이 갈리는 기점이 된다. 그들은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신이 연마한 안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의 중세시대, 인쇄술의 발명으로 책이 보급되고 더불어 안경의 수요가 생겨났다. 동서양 모두 안경은 고가의 상품이었다. 중국 송원 시대 안경 1부의 값은 말 한 필의 값과 맞먹었다. 17세기, 안경의 역사에는 획기적 변화들이 발생한다. 우선 오목렌즈의 근시경이 보급되면서 대중에게 유통되기 시작했고 안경과 함께 시력검사를 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특히 17세기 스페인 상류사회에서는 엄숙함을 드러내기 위해 안경을 착용했고 색이 든 렌즈를 끼고 태양을 직시하며 행복을 기원하는 문화가 유행하면서 대량소비로 이어졌단다. 선글라스의 본격적인 시작인 셈. 18세기 후반 사치스런 케이스와 진주, 금 고가의 재료로 만든 안경이 귀족 계급층에서 유행했고 ‘책을 읽는’ 지적인 인간임을 드러내주는 소비재로 각광 받는다.

요즘 한국사회는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땅의 역사를 한쪽은 다-초점렌즈로 읽자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외알렌즈 하나로 충분하다고 우긴다. 이 문제에 대해 안경이란 사물은 무슨 답을 줄 수 있을까? 안경이 인간에게 수용되기까지 렌즈를 가는 연마기술이 중요했다. 이때 사용되는 연마제는 페르시아산 바다조개의 표면을 이용한 것으로 서역지방의 산물이었다. 안경의 발명은 서구에서 했지만, 기술축적과 발전은 동서양 모두의 힘이 결합된 것이다. 한국사회가 쓴 안경에 서리가 너무 끼었다. 자신의 시각만 따르다가 보지 못한 것들, 세상에 대한 왜곡된 시선 이 모든 것을 말끔하게 닦아내자. 지나간 시간 앞에 계면쩍게 머리 긁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안경알이 두 개인 건 바로 왼쪽과 오른쪽, 나와 타자를 상정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김홍기ㆍ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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