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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의 넋’ 40년 만에 고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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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의 넋’ 40년 만에 고국으로

입력
2015.11.0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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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서 숨진 원양선원 유해 4위 유족에 인계

1957년 6월 김일환(오른쪽) 당시 상공부장관이 윤정구 지남호 선장에게 밧줄을 건네고 있다. 지남호는 인도양에서 조업 활동을 한 대한민국 최초의 원양어선이다. 한국원양산업협회 제공
1957년 6월 김일환(오른쪽) 당시 상공부장관이 윤정구 지남호 선장에게 밧줄을 건네고 있다. 지남호는 인도양에서 조업 활동을 한 대한민국 최초의 원양어선이다. 한국원양산업협회 제공

1960~70년대 이역만리 바다에서 원양어업 활동을 통해 외화벌이 역군으로 활약하다 불의의 사고로 사망해, 지구 반대편 외딴 섬에 망향(望鄕)의 넋으로 남은 원양선원들의 유해가 4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해양수산부는 대서양 라스팔마스 섬에 매장되었다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돌아온 순직선원 유골 4위(位)를 유족들에게 인계했다고 5일 밝혔다.

라스팔마스는 카나리아 제도에 위치한 스페인령 섬으로, 66년부터 한국 대서양 어업의 전진기지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 고국에 돌아온 선원들은 70년대 라스팔마스를 중심으로 서부 아프리카 등 대서양에서 원양어선 조업활동을 하다가 현지에서 사망했다. 이충구 라스팔마스 한인회장은 “초창기 원양선원들은 경험이 부족해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났다”며 “70∼75년 사이 한 달에 한 명 정도 사람이 죽었다”고 회고했다. 라스팔마스에만 선원 118명이 묻혀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번에 돌아오는 네 명 중 한 명은 미혼이었고, 나머지 세 명의 경우 갓 태어난 아이가 있던 것으로 안다”며 “70년대 초반 한국 외화수입의 5%를 원양어업에서 얻을 정도로 원양선원들은 경제의 역군이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유해를 한국으로 운구하기가 쉽지 않아, 선원들이 조업 중 사고로 사망하면 현지에 유해를 매장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2002년부터 해외에 매장된 선원들의 묘지를 관리하기 시작해 현재 관리 중인 원양어선 묘지는 스페인 사모아 수리남 등 7개 국가 327기(基)에 이른다. 해수부는 유가족이 희망하는 경우 묘지 이장을 무상으로 지원해 주고 있다.

세종=이영창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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