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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도 기묘하게 길 만들기

입력
2015.11.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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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를 펴낸 김솔 소설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첫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를 펴낸 김솔 소설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지도가 주어지지 않는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시대다. 주어진 문항에 맞는 답변만 체크하면 질문을 하나도 품지 않아도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매뉴얼이 있다고 예상되는 직업군에 입성하면 별다른 문제 상황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물며 운전을 할 때에도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요즘이지 않은가. 이쯤에서 우리는 경제부터 정치에 이르기까지 삶을 구성하는 기본 조건들이 대체로 불안한 데에 그 근본 원인이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꺼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좌충우돌을 감당하지 않는 대신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헤아려보고, 모든 불안을 감내하며 방황을 실험하자고 권유하기란 망설여진다. 부딪히고 깨질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되기에 그렇다. 소설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작가가 무슨 말을 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 알아내려고 한다. 작가가 정해놓은 답을 찾는 일만이 소설을 읽는 이유의 전부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습관에 짓궂은 방법으로 제동을 거는 책이 있다. 김솔의 첫 번째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가 그것이다. 김솔의 소설은 독자를 요동치게 한다. 정해진 독서법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책이다. 이를테면 모든 문단의 처음 혹은 끝에 “하지만 그보다 앞서”라는 문장을 넣어 방금 말한 이야기의 바로 직전에 일어난 일들을 거꾸로 추적해 들어가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은각사’),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에 각주를 다는 방식을 활용한 소설도 있고(‘피그말리온 살인 사건’), 소설을 짓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지어진 소설의 내용이 교차하는 소설도 있다(‘소설 작법’). 소설 속 인물들이 이국적인 이름을 가지는 경우와 소설의 배경이 국가와 시대를 넘나드는 일은 부지기수다. 뿐인가. 김솔의 소설에는 카프카와 멜빌, 미시마 유키오, 생텍쥐페리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이 그 배면에 꽤나 자주 개입해 들어오는데, 작품을 읽으면서 독자는 행여 자신이 소설 배면에 깔린 다른 작품들에 대한 이해가 충만하지 못해 지금 읽고 있는 소설에 대한 엉뚱한 해석을 내놓을까 봐 전전긍긍하게 되기도 한다. 김솔의 소설집이 전하는 단 하나의 가르침이란 없으므로 이 책의 지도를 만드는 역할은 철저하게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그런데 이와 같은 씨름은 애초부터 읽기에 참여해왔던 모든 독자의 몫이지 않았던가. 정답을 움켜쥘 수 없는 이야기가 제공하는 방황 속에서, 우리는 두렵고 불안한 만큼 치열하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정답과 오답 사이에 놓인 희미한 경계에서 헤매고 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가짜가 아니다. 낯설고도 기묘한 작법으로 쓰인 김솔의 소설은 우리에게 그 점을 일깨워준다. 양경언ㆍ문학평론가

◆작가 약력

1973년 광주에서 태어나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단편 ‘소설작법’으로 2013년 제3회 문지문학상(구 웹진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문학과지성사)는 피그말리온 신화를 패러디해 한국의 외모지상주의를 폭로하는 ‘피그말리온 살인 사건’, 국내 출판계와 독서 시장을 풍자하는 ‘소설 작법’ 등 10편의 단편이 실렸다.

김솔 첫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
김솔 첫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 번째'

책 속 한 문장

솔직히 말해서, 난 아직도 강의실에 앉아 있는 작자들의 심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네. 남들의 글은 읽지 않으면서도 제 글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읽히고 싶어서 안달이니, 적어도 자본주의 윤리 강령의 핵심 모토인 ‘기브 앤 테이크’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개인화, 정보의 홍수, 디지털치매, 불평등 등의 단어들을 어떤 순서로 묶어야 작금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소설 작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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