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의 카페 ‘반하다’. 30개 가량의 의자가 탁자와 함께 카페 안 주방 쪽을 향해 배열됐다. 작은 스크린이 천정에서 내려오면서 아담한 카페는 순식간에 소극장으로 변했다. 카페 주인 겸 영화평론가인 오동진씨의 소개에 이어 영화 상영이 시작됐다. 5일 개봉하는 대만-일본 합작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이었다. 관람료는 1인당 1만원. 커피 한 잔과 원두 한 봉지, 일본 작가 에쿠리 가오리의 장편소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이 포함된 가격이었다. 이날 카페에서 열린 두 차례 상영회를 찾은 관객은 모두 47명.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상영 중인 상업영화 흥행 수입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관객 입장에선 큰 만족감을 느낀 자리였다.
동네 작은 극장들이 대형 멀티플렉스를 상대로 작은 반란을 꿈꾸고 있다. 많은 좌석과 편의시설을 갖췄으나 정작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없는 역설을 지닌 멀티플렉스와 달리 개성 넘치는 작품들로 영화 애호가들을 발길을 붙든다. 비주류 영화의 유통망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영화 문화 운동이 싹트는 토양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용산구 보광동에 문을 연 ‘극장판’은 6개 좌석으로 이뤄진 초미니 극장이다. 단편영화 전용 상영관으로 1인 관람료는 2,000원. 상영시간표는 따로 없다. 관객이 들어오면 영화를 상영한다. 지인들에게 자신이 만든 단편영화를 상영하고 싶은 영화학도 등을 위해 대관도 해준다. 4~6명이 8만원을 내면 120분 동안 공간을 빌릴 수 있다. 지난해 독립영화 ‘족구왕’으로 독립영화계의 별이 된 안재홍 주연의 ‘플래쉬 몹 같은 내 생일’ ‘다정하게 바삭 바삭’ 등 단편영화 4편이 상영 중이다. 매달 1일 상영작이 바뀐다.
2013년 개관한 종로구 옥인동의 ‘옥인상영관’은 ‘극장판’의 선배다. 역시나 6개 좌석으로 이뤄진 이 작디 작은 극장에선 ‘지금 우리’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잔상’ ‘잘하지도 못하면서’ 등 중ㆍ단편 4편이 상영 중이다. 주말에만 문을 열어 오후 1시, 3시, 5시 하루 3회 상영한다. 5,000원을 내면 종일 제한 없이 영화를 볼 수 있다. 간이의자까지 포함하면 최대 11명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광주 망월동에는 옥인상영관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망월상영관이 있다.
동네 극장은 영화 한편 보고 뿔뿔이 흩어지는 극장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는 공동체로 진화할 잠재력이 있다. 영화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다.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 싶으나 현실적으로 벽이 높은 작은 영화들에게 대안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은 전국 10개 남짓 스크린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오동진씨는 “수익성은 떨어지지만 작은 영화들을 위한 대안 공간을 끊임 없이 개척해야 한다”며 “소수의 사람들이 만나서 작은 진원지를 만들면 (대작 위주의)영화상영 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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