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야구대표팀의 간판 율리에스키 구리엘(31)은 지난 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국내 취재진과 마주한 자리에서 8년간 가슴 속에 품었던 한 선수의 이름을 떠올렸다. 2008 베이징 올림픽 한국과 결승전에서 구리엘은 9회 1사 만루 역전 기회에서 병살타를 쳤다. 그는 “7년 전 그 때를 잊지 못한다. 병살타를 친 뒤 매일 밤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구리엘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선수는 프리미어 12 대표팀 마무리가 유력한 정대현(37ㆍ롯데)이다 .
정대현은 한국 야구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마운드를 지켰다. 이름 석자를 처음으로 알린 대회는 경희대 4학년 때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다. 당시 아마추어 선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에 발탁된 정대현은 미국전 선발로 2경기에 등판해 13⅓이닝 동안 2실점을 막아 한국이 동메달을 따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역동적인 언더핸드스로 투구폼에서 나오는 싱커에 당황한 미국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이 때 활약을 발판으로 정대현은 대표팀의 터줏대감이 됐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09년 제2회 WBC,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3년 제3회 WBC까지 쉬지 않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3-2로 앞선 9회 1사 만루 위기에서 구원 등판해 구리엘을 상대로 스트라이크 2개를 연달아 꽂은 뒤 3구째에 유격수 병살타를 유도해 한국 야구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기기도 했다.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는 정대현은 이번에도 대표팀에 승선했다. 그런데 임무는 어느 때보다 막중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해외 원정 도박혐의로 간판 마무리 후보들의 대거 이탈로 고심에 빠진 김인식 감독은‘구관이 명관’이라는 결론을 내려가는 단계다. 당초 정대현은 대표팀 선발조차 미지수였다. 적지 않은 나이에 지난해 말 팔꿈치 수술까지 받은 정대현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큰 경기에서는‘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야구계의 중론이었다.
정대현도 일각의 우려를 털고 현재 투수들 가운데 가장 좋은 몸 상태를 자랑하고 있다. 사실상 마지막 국가대표가 될 그는 “시즌보다 몸 상태는 좋다”면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표팀에 합류해서 운동하는 것만으로 좋다”고 자세를 낮췄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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