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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통해 전염되는 '동그라미 공포'

입력
2015.11.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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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에 맺힌 이슬방울이 혐오스럽다면, 먹음직스런 군밤이나 땡땡이 무늬 아이 옷을 보면서 불쾌감을 느낀다면 당신은 환공포증 환자다. 물방울이나 연탄 구멍처럼 반복되는 원에 대해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는 환공포증은 아직 명확한 원인도 심도 깊은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위에 나열된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이 누군가에겐 고통이자 공포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낙엽에 맺힌 이슬방울이 혐오스럽다면, 먹음직스런 군밤이나 땡땡이 무늬 아이 옷을 보면서 불쾌감을 느낀다면 당신은 환공포증 환자다. 물방울이나 연탄 구멍처럼 반복되는 원에 대해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끼는 환공포증은 아직 명확한 원인도 심도 깊은 연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위에 나열된 일상의 소소한 아름다움이 누군가에겐 고통이자 공포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동그라미를 죽여 버리고 싶다.”

김은솔(25ㆍ여)씨는 주전자 뚜껑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이나 연근처럼 규칙적으로 난 구멍을 보면 손발에 힘이 빠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김씨는 반복되는 특정 문양에 대해 혐오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일명 ‘환공포증(Trypophobia)’환자다. 김씨와 비슷한 처지의 환공포증 환자들이 막연한 불쾌감과 함께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대상은 길바닥에 떨어진 꽃잎이나 누군가가 입은 옷, 빵 절단면 같은 평범한 사물들이다. 따라서 증상이 심한 사람은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자신을 환공포증 환자라고 밝힌 한 학생은 인터넷에 올린 포스팅에서 “시험 볼 때 답을 입력할 OMR카드를 쳐다볼 수조차 없을 정도”라며 괴로워했다.

물방울ㆍ연근 등 반복되는 문양 보면

강한 혐오감ㆍ두려움ㆍ불쾌감 느껴

환공포증은 의학계에서 인정받은 정식 질환이 아니다. 정신과 진단 체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특정 공포증의 진단은 뚜렷한 공포 반응과 함께 이를 피하려는 행동으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 또는 개인의 중요한 영역에서 기능적 장애가 발생할 경우 내려진다. 이에 비해 환공포증은 특정 무늬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느끼는 정도이므로 의학적으로 공포증이라기보다 강박증에 가깝다. 전 세계 인구의 16%정도가 환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또한 확실치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흥미로워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극도의 불안과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전 세계 인구의 16%가 증상 앓아

그런데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환공포증을 유발하는 이미지가 무분별하게 퍼지면서 정상인들마저 이로 인한 불쾌감과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2일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환공포증’이란 단어가 포함된 게시물을 검색해 보니 2009년까지 연 10건 미만이던 것이 2012년 1,000건을 넘어서더니 2013년엔 2,573건, 지난해 5,313건에 이어 올해들어 10개월 동안 6,749건에 달했다. 사진 위주의 SNS 인스타그램에서도 6,600여건의 환공포증 이미지가 검색될 정도다.

환공포증 유발 이미지 무분별 확산

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환공포증 테스트’라는 제목의 포스팅들을 열어보면 사람의 피부에 연꽃 씨방을 합성한 이미지나 정상인도 소름이 끼칠 만한 특별한 자연현상을 담은 사진들이 줄줄이 올라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사진 보고 소름 끼치면 환공포증 환자”라는 문구도 덧붙여 놓았다. 문제는 정상인이라도 이런 환공포증 유발 이미지를 보고 난 후 잔상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거나 마치 자신이 환공포증 환자가 된 듯한 불안감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네이버 지식IN에 오른 1,000여건의 환공포증 관련 게시물 중엔 단순한 궁금증과 함께 “아까 인터넷 환공포증 사진 보고 그랬는데 자꾸 생각나고 팔에 소름 돋고 잠을 못 자겠어요. 이거 없앨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나 “왠지 막 소리지르고 울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계속 생각나고 두려워서… 숨 쉬기가 조금 힘들어졌어요.” 등 후유증을 호소하거나 치료방법을 묻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정상인도 환자인 듯 불안감 사로잡혀

심할 경우 강박사고 진단도…

정신과 전문의 이성희 원장은 “정상인의 경우 혐오스런 이미지를 접하면서 각인 또는 암시를 받았다 하더라도 불쾌감을 넘어 공포증에 이를 확률은 적다” 면서도 “인터넷상의 증상처럼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떠 오르면서 괴로워지고 조절이나 억제가 잘 되지 않는다면 강박사고(Obsession)를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치료방법에 대해 이 원장은 “강박사고로 진단이 내려질 경우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최민영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부 4)

<알림> 아래 이미지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지만 만의 하나, 환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줄 수 있으므로 환공포증이 의심되는 경우 더 이상 스크롤 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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