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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대본과 광보 형 연출에 살짝 넘어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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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대본과 광보 형 연출에 살짝 넘어갔죠"

입력
2015.11.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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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동안이 콤플렉스였다” 같은 자랑을 천연덕스럽게 늘어놓는다. “내가 20대 때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종이박스 덮고 자면서도 ‘연극적인 게 뭔가?’를 고민했다” 같은, 지금의 20대가 들으면 속 뒤집어질 얘기도 줄줄이 내놓는다. 그런데 묘하게 진지한 애티튜드가 듣는 사람을 홀린다. ‘대학로 최강 동안’을 자랑하는 배우 김영민(44) 얘기다. 휴일에도 혼자 연습실을 찾는 성실함, 데뷔 20여년차 짬밥이 만들어 준 눈치, 연륜에서 배어나는 연기력으로 연극계 러브콜 1순위로 불리는 그다.

김영민은 인터뷰 내내 “이제까지 출연한 모든 작품이 터닝포인트”라는 인터뷰용 멘트도 서슴지 않았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김영민은 인터뷰 내내 “이제까지 출연한 모든 작품이 터닝포인트”라는 인터뷰용 멘트도 서슴지 않았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상반기 ‘엠 버터플라이’ 이후 ‘협녀’ ‘일대일’ ‘마돈나’ 등 영화에만 전념하며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던 김영민이 다시 무대로 온다. 김광보 서울시극단 단장의 ‘살짝 넘어갔다가 얻어맞았다’를 통해서다. 김 단장은 이 작품을 끝으로 단장 임기 3년 간 서울시극단 외부 연출을 접는다. 2일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만난 김영민은 “연출을 믿고 선택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4월 ‘엠 버터플라이’ 공연 때 광보 형이 이 대본을 주더라고요. ‘재미는 있네’하고 읽었는데, 이틀 있다 바로 ‘할 거지?’ 물어서 할 거라고 했죠. 사실 그때는 무슨 배역 맡을지도 안 정했었어요. 하하.”

드라마 ‘도쿄타워’로 국내 알려진 일본 극작가 츠치다 히데오의 대본을 극작가 김은성이 각색한 이 작품은 교도소를 배경으로 남자들의 찌질한 편가르기를 다룬 블랙코미디다. 누구 하나 튀지 않고 간수 둘, 죄수 여섯 명이 똑같은 분량의 대사를 주고받는, “주인공도 조연도 없는” 연극이다. 김영민처럼 ‘선생님과 선배님을 오가는’ 중견 배우들이 줄줄이 연출가 하나 믿고 배역도 안 정해진 이 작품에 출연을 결정했고, 간수 역할을 맡은 유연수, 한동규를 제외하고 죄수 역의 유병훈, 이석준, 유성주, 이승주, 임철수는 연습 초반 이런 저런 역할을 돌아가면서 맡았다. 연습 기간 “어린 죄수 역을 번갈아 했다”는 김영민은 동꾸리아 출신의 신입 죄수 수철 역을 맡았다.

그는 어색한 부산 사투리로 김 연출가의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2005년 연극 ‘에쿠우스’ 연습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인생에서 제일 안 풀렸던” 20대를 지나 콤플렉스였던 동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이 무렵, 김영민은 30대 중반 나이로 십대 소년 알런 역을 꿰찼고, 한 장면 동선 잡는 데 하루가 걸리는 “징글징글하게 지독했던” 연출가를 만났다. 그리고 “연습 중 장염 걸린 배우만 3명”이었던 이 작품을 통해 대학로 스타로 우뚝 올랐다. “(김 연출가가) 제가 찌질하다는 걸 일찍 간파해서인지 그 후로 쭉 찌질한 역할만 준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는 “몇 년 전부터는 연습을 지켜보면서 배우가 에너지를 내뿜을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으로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중 선배들의 다양한 성대모사를 보여줬지만 하나 같이 어설펐다. 어느 여배우의 성대모사 중엔 "배우는 공연과 공연 사이가 중요해”라고 했다. 그는 "연극, 영화, 뮤지컬, 전시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감각을 익히려 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인터뷰 중 선배들의 다양한 성대모사를 보여줬지만 하나 같이 어설펐다. 어느 여배우의 성대모사 중엔 "배우는 공연과 공연 사이가 중요해”라고 했다. 그는 "연극, 영화, 뮤지컬, 전시 등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감각을 익히려 한다"고 말했다. 신상순 선임기자ssshin@hankookilbo.com

서로 눈만 봐도 ‘치고 빠질 때를 아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재미를 더해준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번 작품을 통해 ‘공인 김광보 사단’이 돼 버린 배우들은 사실 김 연출가와 상관없이 김영민과 적게는 1~2개, 많게는 5~6개씩 같은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칸 영화제에서 유명 감독들 만나면서 생뚱맞게 ‘한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일 하는 게 중요하구나’ 생각했어요. 주연도 조연도 없는 작품에서 누구 하나 튀지 않고 배려하는 동료들을 보면서도 느끼죠.”

공연은 5일부터 18일까지 LG아트센터. (02)2005-0114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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