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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새누리, 지금도 늦지 않다

입력
2015.11.0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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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게 주권을 상실했던 시기의 친일 논란과 독재정권 및 군사권위주의 정권의 태생적 한계에 대한 해석과 사유의 차이는 급기야 때 아닌 ‘역사전쟁’을 야기했다. 해방 70년.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질곡과 굴절, 환희와 영광의 역사가 교차한다. 산업화와 성장지상주의가 오늘의 중견국가 대한민국을 가능케 했지만 그 그늘의 역사는 구조적인 부조리와 부패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산업화는 민주화의 희생 위에서 가능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민주화는 산업화로 인한 중산층의 증가로 가능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이 둘은 상호갈등적이어선 안 된다.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는 제로섬 게임처럼 진영논리의 한 가운데 똬리 틀고 있다.

역사에 우파적 관점과 좌파적 관점이 있다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다. 긍정과 부정의 해석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현재의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는 언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역사인식과 가치관에 따라 해석은 다르게 나타난다. 모든 정치사회적 이슈를 좌우로 재단하려 하고, 진영논리적 흑백 논리로 인식하는 프레임에 우리 모두 익숙해 있다.

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서 김무성대표가 회의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2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서 김무성대표가 회의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고영권기자youngkoh@hankookilbo.com

새누리당 대표는 아예 노골적으로 “역사전쟁에서 보수우파가 승리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은 온 국민이 좌와 우로 나눠져 벌이는 일대 ‘문화혁명적 투쟁’으로 규정해야 논리적 인과관계상 맞다.

여당은 청와대가 강력히 추동한 교과서 국정화 이슈에 장단을 맞추고, 공천 룰로 어색해진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우리가 남이가’라며 균열을 봉합하는 정치적 부수효과마저 챙기게 됐다. 그리고 새누리당은 항상 여당보다 한 발 늦는 야당의 ‘투쟁’을 국정 발목 잡기로 규정하면서 ‘민생’이라는 ‘전가의 보도’로 출구 전략을 모색하는 선거의 고수다운 행보로 옮겨갈 것이다.

그리고 야당은 여당이 제기하는 민생 발목 잡는 야당이라는 프레임에 걸려 허망하게 지지율을 까먹는 패턴을 반복할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면 현재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는 학문과 역사인식의 관점에서 봐야 하나, 정치영역의 선거공학적 관점에서 봐야 하나.

현행 역사교과서에 잘못된 서술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사회적 논의와 학문적 토론을 거쳐 새롭게 역사적 관점에 대한 해석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국정화로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준다는 발상은 논의의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새누리당은 단일대오를 형성하면서 지성과 비판을 아예 저버리고, 대통령을 위한 전위 정당으로 전락하고 있다. 여당 내 극히 소수의 양식 있는 비판과 목소리는 아예 묻히고 말았다.

애당초 수평적 당ㆍ청 관계 운운 자체가 난센스였다. 대선 입지를 확보하려는 유력 대권주자의 정치적 계산과 공천 탈락을 의식하면서 침묵하는 다수 의원, 친박의 돌격대를 자처하는 일부 의원들의 동상이몽이 공존하는 당당하지 못한 정당, 그것이 새누리당의 현 주소다.

진정 새누리당의 대다수 국회의원들은 친박 주류가 부르짖듯이 현재의 ‘좌편향 교과서’가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지성과 품격을 외면한 정치결사체이며, 확신이 없으면서도 침묵한다면 ‘비겁’한 봉급쟁이 직업정치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정당이 인구 5,000만의 대한민국 집권당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는 것이 ‘역사교육의 정상화’라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가.

지금이라도 새누리당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집권당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역사를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카가 얘기했듯이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에 솔직해져야 한다. 이탈리아 역사가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선언했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과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란 의미다. 정치에도 최소한의 지성이 존재할 때 민생도 챙길 수 있다. 역사와 민생은 별개가 아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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