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결과 발표 때는 이의제기 없어
경북대가 ‘증도가자’ 진위논란의 중심에 선 남권희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직책이 ‘경북대 산학협력단장’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4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증도가자는 1377년에 인쇄한 직지심체요절보다 100년 이상 앞선 것이라는 연구결과 발표 때는 가만 있다가 뒤늦게 이 같은 입장을 발표한 데 대해 시선이 곱지 않다.
경북대는 2일 ‘증도가자 관련 경북대 남권희 교수 보도’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별도로 내고 남권희 교수는 ‘경북대 산학협력단장’이거나 ‘경북대 산학협력단을 이끈 교수’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현재 경북대 산학협력단장은 다른 교수가 맡고 있으며, 남 교수는 연간 경북대산학협력단이 수행하는 연간 2,000여 건의 연구 및 연구용역 과제 중 2010년 ‘조선왕조 주조 금속활자 복원사업 연구’와 2014년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 연구’과제의 연구책임자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북대는 지난 4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증도가자가 진품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 당시 상당수 언론에서 ‘경북대 산학협력단장’이라고 직책을 잘못 사용했지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역 대학가에선 남 교수의 직책이나 직함은 실체적 진실규명과 별로 상관 없는 일이지만 잘 나갈 때는 모른 척 하다가 갑자기 부정적 인물로 부상하게 되자 학교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한 게 아니냐는 것이 대체적 분석이다.
증도가자(證道歌字)는 1239년 고려시대에 목판본으로 복각한 보물 제758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맨 처음 찍을 때 사용한 금속활자로 추정된다. 목판본 증도가 말미에 ‘이 책의 원본은 남명선사가 문종 30년(1076)년 주자(鑄字ㆍ금속활자)로 편찬했지만 더 전해지지 않아 목판으로 복각해 찍었다’는 기록이 있다. 남 교수 측은 고려시대에도 실전돼 목판본으로 다시 찍은 증도가의 원판 금속활자를 2010년 발견했고, 연구결과 활자에 묻은 먹이 탄소동위원소측정 결과 당시에 사용하던 것이고, 목판인쇄본과 활자가 일치하는 등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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