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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국정화 예비비 논란 완전해부

입력
2015.11.0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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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천안함, 태풍 때 쓴 예비비는 정부가 알아서 공개

예비비 사용 내역 국회제출 전례도 있는 걸로 나타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예비비’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예비비 논란은 정부가 지난달 13일 국무회의를 열고 교과서 국정화에 예비비 44억을 쓰기로 의결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촉발됐습니다. 이에 야당 등은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 예산을 ‘군사 작전 하듯’ 몰래 처리했다며 격분하고 있는데요. 정부는 교과서 국정화에 드는 비용을 내년도 일반 예산안에 포함시키면 교과서 발행 스케줄을 맞출 수 없어서 예비비 지출은 불가피 했다는 입장입니다. 그러자 야당은 교과서 국정화 예비비 사용 내역이라도 보자며, 예비비 사용 내역을 국회에 제출하라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예비비는 일종의 비상금으로 마련되는 돈입니다. 국가재정법은 ‘정부가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또는 예산초과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일반회계 예산총액의 100분의 1 이내의 금액을 예비비로 세입세출예산에 계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올해 예산에서 예비비 규모는 약 3조원입니다.

예비비는 비상금이란 특성상 나머지 일반 예산과 국회 승인 절차가 다릅니다. 일반적인 예산은 전년도 예산 편성 단계에서부터 각 정부부처가 사용계획을 꼼꼼히 짜서 기재부 심의를 거쳐 국회 승인을 받아야만 그제서야 예산 집행이 가능합니다. 반면 예비비는 예산 심사 단계에서는 총액만 국회의 승인을 받습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 지 예산 심사 단계에서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비비를 써야 할 상황이 오면 소관 주무부처가 예비비를 어디어디에 쓰겠다는 명세서를 작성해 기재부에 넘깁니다. 이어 기재부는 예비비 지출안을 심사해 국무회의 안건으로 넘기고, 그런 지출안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되면 예비비 지출이 가능해 집니다. 편성부터 집행까지 모든 의사결정이 행정부 내에서만 이뤄지고 국회가 개입할 틈이 없다는 것이 일반 예산과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예비비 지출도 국회의 사후 승인은 받아야 하는데요. 국가재정법은 ‘정부는 예비비로 사용한 금액의 총괄명세서를 다음 연도 5월31일까지 국회에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올해 예비비에서 충당한 국정화 예비비의 경우 정부가 내년 5월31일까지만 국회에 제출해 사후 승인을 받으면 됩니다.

기재부와 교육부 등이 국정화 예비비 사용 내역을 제출하라는 국회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법에 명시된 국회 제출 기한인 5월31일 이전에 예비비 지출 내역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고, 지금까지 5월31일 전에 국회에 내역을 제출한 적도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부가 예비비 지출 내역을 5월31일 이전에 공개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정부의 논리에 흠집이 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가령 기재부는 올해 6월 중동호흡기 증후군(메르스) 대처를 위한 예비비 지출 내역을 자발적으로 공개한 바 있습니다.

메르스 예비비 사용 내역 보도자료.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캡처
메르스 예비비 사용 내역 보도자료.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캡처

기재부는 또 2012년 9월 태풍 피해복구 예비비와 같은 해 5월 천안함 관련 예비비, 2009년 신종플루 확산 예비비의 지출 내역을 각각 보도자료 형태로 공개했습니다.

천안함 예비비 사용 내역 보도자료.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캡처
천안함 예비비 사용 내역 보도자료.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캡처
신종플루 예비비 사용 내역 보도자료.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캡처
신종플루 예비비 사용 내역 보도자료. 기획재정부 홈페이지 캡처

이처럼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 없이도 알아서 스스로 공개했던 정부가 국정화 예비비만큼은 국회의 제출요구에도 내지 못하겠다고 버티고 있는 모습인데요. ‘정부가 유불리에 따라 예비비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당시에는 정보공개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공개한 것”이라며 “정부가 일부 예비비 사용 내역을 자발적으로 공개했다고 해서, 정부가 국회에 예비비 사용 내역을 제출해야 하는 의무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합니다.

‘정부가 공개하고 싶으면 공개할 수 있지만, 꼭 공개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정부가 국회 요구를 받고 5월31일 이전에 예비비 사용 내역을 제출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주선 무소속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정부는 박 의원의 요구를 받고 그 해 예비비 세부 내역을 박 의원에게 제출했습니다. 기재부 국방부 농림수산식품부 등 각 정부부처가 박 의원에게 재해대책비와 구제역 보상비, G20준비위원회 경비, 아이티안정화 임무단 파견 등 예비비 내역을 제출한 건데요.

이 사례를 보면 ‘5월31일 이전에 국회에 예비비 사용 내역을 제출한 전례가 없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걸로 보입니다. 그러니 정부가 국정화 예비비 사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뭔가 떳떳하지 못한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겠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는 겁니다.

물론 정부 말대로 국회의 제출 요구에 꼭 응하라는 법도 없으니 국회 제출을 거부해도 불법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산과 관련해 예전보다 훨씬 투명하고 철두철미해졌다고 자부해오던 정부가 이번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서만큼은 형식 논리에 기댄 군색한 논리만 반복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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