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난민 사태 때문에 수십년 째 신음하는 우리의 존재가 점점 잊혀지고 있어요.”
케냐 북동부 지역 소말리아와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세계 최대 난민촌 다다브. 난민촌 내 5개 구역 중 이포2(Ifo-2) 구역에는 나뭇가지 기둥에 방수천을 덧대 만든 임시 거처용 천막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 곳에 사는 아덴 누르 아데이(24ㆍ여)의 남편은 최근 가족들을 캠프에 남겨둔 채 일거리를 찾아 소말리아로 되돌아 갔다. 소말리아는 여전히 치열한 내전과 이슬람 무장 세력의 테러 등으로 인해 치안이 최악인 상황이지만, 영양실조로 네 살 난 딸을 잃은 뒤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최근 난민촌 내 식량 배급량과 기초 서비스가 크게 줄어들면서 난민들의 삶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케냐 내에서 취업을 할 수도 없다. 케냐 국적이 없기 때문이다. 난민촌 내 상행위를 하거나 제대로 된 건축물을 함부로 지을 수도 없을뿐더러, 난민촌 내 이동조차 극히 제한돼 있다.
현재 소말리아에서 고향 땅을 경작 중인 아데이의 남편은 가족에게 ‘보잘것없는 물품들’만 간간이 보내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예 난민촌 내에서 손을 놓고 있는 것 보단 낫다고 아데이의 가족들은 판단하고 있다. 아데이는 “남편이 가족들을 제대로 먹여 살릴 수 없는 상황을 무척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했다”라며 “구호단체들 마저 우리를 버린 지금 우리의 선택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 뿐”이라고 말했다.
난민촌 내 하게데라(Hagedera) 지역 작은 매점에서 일하는 모하마드 압둘라(26) 역시 가족들은 이곳에 남겨둔 채 혼자 소말리아 고향으로 돌아갈 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지난 1994년 내전을 피해 정착한 뒤 이곳에서 성장기를 거쳐 가정까진 꾸렸지만, 점점 국제 기금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압둘라는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고 내 물건을 사는 데도 케냐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올 여름 식량 배급량은 3분의 1로 줄었다. 다다브 난민촌은 하나의 거대한 감옥이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유럽에서 고조되는 난민 위기로 인해 세계 최대 난민촌인 다다브 난민들이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다”고 미국 방송 CNN이 최근 보도했다.
1991년 처음 세워진 다다브 난민촌은 기아와 내전을 피해 이곳으로 온 소말리아 난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당초 이곳은 9만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도록 이포(Ifo), 하가데라(hagadera), 드가할리(dgahaley) 등 3개 구역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지난 24년 동안 내전과 기근을 피해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5개 구역으로 늘어난 상태다. 이마저도 전원 수용이 곤란해 현재 다다브에는 당초 목표 수용 인원의 5배가 훌쩍 넘는 50만명이 수용소 인근에 낡은 천막을 치고 빽빽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구 캠프 지역엔 곧 쓰러질 것 같은 병원 시설이라도 있지만 캠프 외곽 지역에는 제대로 된 기본 공공위생 시설 조차 없다. 수용 한계치를 넘으면서 이들이 공급받는 음식과 물, 의료 및 기초 시설의 양과 질은 크게 저하됐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특히 지난해에만 수만명이 새로 다다브 난민촌에 수용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영화배우인 안젤리나 졸리 유엔난민기구(UNHCR) 특사(당시 친선대사)는 2012년 다다브 방문 당시 “방문했던 난민촌 중에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밀려드는 난민, 줄어드는 원조
지금 다다브 난민촌은 밀려드는 난민 행렬에 비해, 운영 자금은 줄어들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옥스팜, 세이브더칠드런 등 다다브에서 활동하는 8개 구호단체는 “다다브 난민촌 구호활동을 위해서는 연간 2,500만달러(약 290억원)가 필요하다”며 “하지만 최근 구호ㆍ기부 자금이 크게 줄면서 난민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라고 지난 12일 밝혔다. 세계식량계획(WFP)이 공급하는 식량 배급량도 절반 가량 줄었다.
최근 기부자들의 시선이 시리아 난민 쪽으로 쏠린 것이 생필품 부족 현상을 부추겼다. 또 올해만 6만여명이 새로 난민촌에 정착하는 등 이어지는 소말리아 난민 행렬로 인해 거주 공간이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교육ㆍ보건 등 기타 공공서비스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매달 300명의 아기가 난민촌에서 태어나고 있다. 한 구호단체 관계자는 “어린이와 노약자 등 약 5만명이 콜레라 등 전염병에 노출돼 있다”며 “난민촌에 새로운 폭력이나 불안정을 촉발시킬 위험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 난민 기금 부족 현상은 전 세계 난민촌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유엔 내부 고위 인사는 지난달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중동ㆍ유럽 지역 난민 위기 사태로 유엔의 인도주의적 기관들이 파산 직전까지 몰리고 있다”며 “이에 따라 수백 만 난민들의 기본적인 요구 조차 충족시킬 수 없는 상태”라고 털어놨다.
반면 난민 행렬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UNHCR에 따르면, 분쟁으로 인해 피난길에 나선 사람은 2010년 하루 평균 1만1,000명 정도였지만 2014년에는 6,000여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매일 4만2,500명이 집을 떠나 헤매는 셈이다.
레바논과 요르단의 최근 음식, 의료품 부족 등으로 인해 시리아 난민 400만명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다. 또 아프리카 차드 공화국 난민촌에 머물고 있는 수단 다르푸르인들도 올해 연말 식량 배급 중단 위기에 처해 있다. 이라크 18개 지역 중 10곳에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운영하는 진료소 184개가 폐쇄돼 300만명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됐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UNHCR 최고대표는 “UNHCR의 올해 수입은 지난해 대비 약 1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구호 단체 예산은 난민 증가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라며 “예산부족으로 난민 어린이의 삶이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태 더 악화시키는 케냐 정부의 강경정책
다다브 난민촌에 대한 케냐 정부의 강경 정책도 난민들의 숨통을 죄는 요인으로 꼽힌다. 케냐 정부는 올 4월 발생한 가리사대학 테러의 ‘연계 고리 역할’로 다다브 난민촌을 지목하고 캠프 철거 계획까지 발표했다. 당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알샤바브 소속 무장대원 4명은 대학 내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무려 148명이 목숨을 잃었다. 윌리엄 루토 케냐 부통령은 “UNHCR이 캠프를 철거하지 않으면 우리가 직접 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치기도 했다.
케냐 정부는 그간 난민캠프가 알샤바브 등 소말리아 무장단체의 무기 밀반입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고 의심해 왔다. 또 테러 계획, 대원 모집 및 교육 활동이 이곳에서 이뤄지거나 적어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케냐 정부는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2013년 9월 나이로비 쇼핑몰 테러가 발생해 67명이 사망하자 UNHCR과 “3년 내 소말리아 난민들을 본국으로 송환한다”는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캠프가 강제 철거될 경우 소말리아 난민들은 또다시 굶주림과 학살의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에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우후루 케나타 케냐 대통령과 만나 “케냐 난민 프로그램에 4,500만달러(약 480억원)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급한 불은 껐지만, 케냐 정부의 압박은 여전히 거세다. 지난달 케냐 경찰은 “캠프 내에서 비밀리에 운영중인 알샤바브 하위 조직을 소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압디 위기그룹 분석가는 “다다브 난민촌의 몸집이 커지면서 케냐 경찰이나 UNHCR의 관리감독이 어려워 지는 등 새로운 불안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케냐 정부가 위험을 과장해 눈엣가시인 이들을 없애려는 구실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나타 대통령은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국가들에 비해 훨씬 열악한 상황에 처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이들 난민을 책임져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다다브 난민들이 열악한 난민촌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이론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이곳 케냐 국적을 갖거나, 제3국에 망명 신청을 하거나, 그도 어려우면 소말리아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케냐 정부는 다다브 난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으려고 하며, 제3국에 망명하는 난민은 전 세계적으로 1%에도 못 미친다. 케냐 정부는 소말리아 귀향 난민들에게 정착금으로 1인당 100달러를 지급하는 등 자발적인 난민 송환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소말리아는 여전히 치안 불안 상태”라고 경고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케냐 지역 대표 찰스 가우드리는 “국제 사회는 소말리아 난민들을 이곳에 몰아 넣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어 놓은 채 정작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은 제대로 공급하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결국 불바다인 소말리아로 되돌아가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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