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팀 야구장 떠나던 관례 끊고
류중일 감독 앞장서 도열해 박수
“지난 4년간 ‘가해자’로 지켜봤기에 그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그 동안 받은 것들을 우승 팀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류중일(52) 삼성 감독은 지난달 31일 두산과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2-13으로 대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완패했다”고 깨끗하게 인정했다. 그러면서 “두산의 우승을 축하한다”고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저, 두산 축하하러 가야 한다”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2011년부터 지휘봉을 잡자마자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4연패를 차지하고 올 정규시즌에서도 우승을 놓치지 않은 류 감독에겐 너무도 어색한 2등이었지만 언젠가 이런 날이 왔을 때 마음 속으로 준비해 온 것이 있었다. 류 감독은 더그아웃으로 다시 내려간 뒤 두산의 시상식이 열리는 3루쪽으로 향했다. 삼성 선수들도 모두 뒤따라 도열해 기꺼이 두산 축하연의 들러리가 돼 줬다. 관중들에게도 낯선 풍경이었다. 보통 우승 팀만 남아 잔치를 즐기는 동안 패배 팀은 조용히 야구장을 떠나곤 했다. 그러나 류 감독과 삼성 선수들은 공식 시상식이 열린 20분 동안 자리를 지켰다. 프로야구는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시리즈 종료 후 2위 팀도 시상을 했다. 하지만 시상식을 위해 한국시리즈 우승팀의 세리머니를 지켜봐야 하는 준우승 팀의 심정을 고려해 1위 팀만 시상식에 참석하기로 규정을 바꿨다. 그러나 류 감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데, 나는 우리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패하면 공식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상대팀을 축하할 생각이다. 얼마나 멋지겠나”라고 말해 왔다. 2011년 삼성은 아시아시리즈에서 일본시리즈 우승팀 소프트뱅크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당시 소프트뱅크는 더그아웃 앞에 도열해 삼성의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축하했다. 류 감독은 “정말 멋졌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이날 선수들에게 “(두산의 우승을)축하해주고 가자”며 앞장섰다. 최근 4년 동안 야구의 마지막을 정상에서 보냈던 삼성 선수들은 패배의 아픔에도 기꺼이 수장의 뜻에 따랐고, 류 감독은 적장 김태형 두산 감독에게 축하 악수를 청한 뒤에야 잠실야구장을 떠났다. 두산 관계자는 “삼성 선수들이 줄지어 선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비록 우승컵을 놓쳤지만 ‘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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