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집회 증가로 고급 기종 필요"
대당 1100만원 달하는 D4S 등
노후장비 교체에 예산 22억 요구
"더 멀리서, 더 선명하게 찍게되면
공포심 느껴 시위 참가자들 위축"
야당·시민단체, 무분별 채증 우려
경찰이 노후화한 집회시위 채증장비 교체를 추진하면서 프로 사진작가가 사용하는 최고가 카메라를 구입하려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채증 대상자의 인권을 존중하겠다며 올해 초 ‘채증활동규칙’까지 개정한 경찰이 최고성능 카메라를 도입하겠다는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1일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 받은 ‘노후 채증장비 교체 사업계획’에 따르면 경찰은 파손되거나 낡은 카메라 190대와 소음측정기 78대, 비디오카메라 48대 등을 교체하기 위해 국회에 22억5,800만원의 예산을 요구했다. 채증장비가 노후화하고, 물리적 충격과 먼지 등으로 상태가 불량해 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2004년에 구입해 기계적 수명이 다한 카메라도 있어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고 있는 지점은 기존에 중급형이나 보급형 카메라를 운영해온 경찰이 단순히 장비 교체에 그치지 않고 최고급 기종을 대거 구입하겠다고 요청한 대목이다. 경찰 사업 계획서 따르면 경찰은 대당 1,100만원에 달하는 ‘니콘 D4S’ 34대의 구입을 추진 중이다. 이 카메라는 야생동물의 움직임이나 스포츠 경기 등 역동적인 장면을 선명하게 포착할 수 있어 카메라 애호가들 사이에서 ‘기자용 카메라’로 불리는 기종이다. 1초에 11장을 찍을 수 있고 최대 200장까지 연사가 가능한 데다가 최고 성능의 ISO감도 기능도 갖춰 야간에도 선명한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또 사업계획서에는 니콘 D4S보다는 한 단계 아래지만 대당 485만원 하는 ‘니콘 D810’ 156대와 대당 284만원 하는 고급 망원렌즈 ‘니콘 70-200 렌즈’ 229개의 구입 계획도 포함됐다.
경찰은 동급 최고 성능과 가격의 카메라와 망원렌즈 도입을 추진하는 데 대해 “야간집회가 증가해 기존에 운영하는 카메라보다 고급 기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에서는 채증장비가 고도화되면 무분별한 채증이 늘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경찰이 지난 1월 채증활동규칙을 개정하며 구체적인 폭력이 있을 때에만 채증을 하는 등 증거수집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과도 배치된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경찰이 멀리서 고성능 카메라로 몰카를 찍으면 채증을 얼마나,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없고, 집회 참가자들이 공포를 느껴 집회 참여도 위축될 것”이라며 “정부가 총선뿐만 아니라 노동개혁 등 사회적 논란이 큰 정책 추진을 앞두고 집회 시위를 옥죄며 저항 세력의 힘을 빼려는 시도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박남춘 의원은 “일선 경찰서에 배포된 카메라, 캠코더 1,424대의 채증건수는 4,169건으로 장비 한 대당 3건도 되지 않는다”며 “채증은 중급, 보급형 카메라로도 충분한데 굳이 최고급 기종이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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