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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민주화 세대의 고해

입력
2015.11.0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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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군, 잘 지내고 있는가?

자네는 2000년대 전반기에 대학을 들어와 사회복지학을 내 밑에서 배웠고, 누구보다도 활발한 학창시절을 보낸 것으로 기억하네. 미국 연수도 하면서 세상에 대한 꿈도 키웠지. 내가 다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복지의 가치와 윤리를 따른다는 것이 주는 압박감이나 현실과의 괴리 속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겠는가? 진정한 휴머니즘과 인권, 그리고 그에 기초한 자유, 정의, 사회연대라는 숭고한 사회복지의 가치들이 박제화된 현실에서 과연 사회복지의 길을 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묻고 또 물었겠지.

졸업한 뒤 서울의 한 복지관에 취업하여 묵묵히 지역복지의 현장에 있다가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지금은 탄생한 지 20년이 지난 시민단체에서 복지운동의 한 축을 받들어내는 의연한 활동가로 일하는 자랑스런 제자로 성장해 있지. 이젠 어느덧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같은 길을 가는 동지적 입장에 서있다네.

지난 여름 전국의 복지활동가들이 모였을 때였지? 자네는 해 저물고 바닷바람이 살랑거리는 제주의 바닷가에서 적당히 취기가 오른 뒤 “전 정말 한국을 떠나고 싶어요! 희망을 못 찾겠어요”라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렸었지. 그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적잖이 당혹과 충격에 쌓였었다네. 우리 사회의 변혁을 위해 시민단체의 활동가로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자네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리라곤 상상도 못했기에.

시간이 지나도 자네의 눈물과 회한 섞인 말이 아직도 생생하네. 하기야 어찌 보면 민주화 세대는 절망의 캄캄한 독재의 벽을 무너뜨리고 승리의 경험을 한 세대로서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을 믿고 이 퇴행의 시기를 견디어 갈 수 있다지만, ‘신자유주의’의 황량한 벌판에 서서 ‘반민주’의 먹구름 속에 ‘헬조선’의 비를 줄곧 맞고 있는 지금의 20, 30대는 언젠가 이 비가 그치고 작렬하는 태양 아래 서게 된다는 희망을 갖기엔 그 어떤 승리의 경험도 없지 않은가 싶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자네 세대의 이 절망과 고통을 바로 우리 민주화 세대가 만들었다는 것이네.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훈장처럼 생각하고 민주화 이후의 세상에 대한 그림을 갖지 못한 채 자만한 지금의 기성 세대인 민주화 세대.

1950년 ‘시민권과 사회계급’이란 책을 통해 복지국가의 역사적 정당성을 인간의 권리로 설명한 토머스 마샬의 개념을 빌어 표현하자면, 민주화 세대는 양심에 따라 행동하고 표현하는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되찾는 시민적 권리(공민권)와 대통령을 직접 뽑아야겠다는 정치적 권리(정치권)의 쟁취에만 머물렀던 것이었네.

그 다음 단계로서 복지국가를 통해 인간의 생존권과 행복권이 보장되는 사회적 권리(사회권)가 와야 함을 적극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지. 그러니 잠깐의 승리에 도취하고 그 너머에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우리 세대보다는 훨씬 더 행복한 새 세상에서 살게 해주고 팠던 바로 그 자식 세대에 실업과 비정규직, 삼포 세대의 한과 눈물을 안기고 있지 않은가?

4ㆍ19 세대를 원망하며 독재와 싸웠던 민주화 세대가 다시 헬조선을 만든 원흉으로 원망 받는 세대가 된 이 시점에서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회개의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단 하나, 민주화 운동의 그 열망과 신념을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에 진력하여 더 이상 자네와 같은 절망의 눈물을 흘리는 청춘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겠지.

감히 함께 하자고, 짐을 같이 나누자고 이야기하진 못하네. 자네들 세대에게 절망과 포기, 탈한국만은 잠시 유예해 달라 말하지도 못하네. 그저 우리가 진작했어야 할 그 몫을 뒤늦게나마 다 하고자 할 뿐. 그러다 보면 어느 사이 복지국가를 만드는 큰 강물의 줄기에 같이 노를 저어가고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10월의 마지막이 가고 쓸쓸하게 뒹구는 낙엽 또한 사라지는 초겨울이 코 앞이네.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시게.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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