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길거리 음식서 업그레이드
단백질 풍부한 건강식 각광
첨가재·가열법 따라 색다른 맛
겨울별미 넘어서 사계절 유혹
제조공정, 위생이 1순위
가공실·포장실은 마치 '클린룸'
위해요소 혼입·오염 원천 차단
“무궁무진하죠. 내일이라도 새로운 게 나와 입맛을 사로잡을 수도 있습니다.”
3대째 부산에서 어묵 산업을 이어가고 있는 김옥규(39) 부산대원어묵 상무는 어묵 가짓수를 물어보자 두 손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든 채 자신 있게 말했다. 달마다 새제품이 시장에 선보이면서 어묵의 종류를 숫자로 특정하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만두피는 하나지만 속에 무엇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고기만두도 됐다가 야채만두로 바뀔 수도 있잖아요. 어묵도 지금 세분화되고 ‘퓨전화’ 되면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습니다.”
어묵은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서민음식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제품 다양화와 새로운 요리법 등장에 따라 ‘국민간식’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어묵업계가 판로확대 및 신제품개발 열기로 들썩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묵의 진화
어묵은 가열방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튀김어묵은 젤리처럼 찰기가 생긴 고기풀을 고온의 기름에 튀겨낸 제품으로 꼬치용이나 반찬 등 국내 소비 대부분을 차지한다. 얇은 평형, 막대기형, 원형 등 여러 모양의 제품생산이 가능하다. 찐 어묵은 고기풀을 원하는 형태로 만든 후 증기를 이용해 익힌 어묵으로 고급제품 제조에 사용된다. 구운 어묵은 꼬챙이에 연육을 붙여 불 위에서 회전시키면서 구운 제품으로 기름과 증기가 아닌 고기풀에 직접 열을 가해 만든다.
어묵은 명태 돔 갈치 조기 등 흰 살 생선의 살만 발라낸 후 가열한 음식이라 단백질이 풍부하고 비린내가 적다. 다양한 모양으로 손쉽게 빚을 수 있고 첨가 재료만 살짝 바꿔줘도 제품종류가 확 늘어난다. 실제로 생김새와 첨가재료 조합에 따라 쏟아지고 있는 신제품을 소개하느라 어묵업체의 카탈로그와 홈페이지는 갈수록 여백이 줄어들고 있다. 국내 최대 어묵업체인 CJ제일제당이 생산하는 어묵 종류만 100가지가 넘고, 부산 지역업체인 대원어묵도 70여 가지 어묵을 판매한다. 어묵 고로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고로케 속에 새로운 첨가재료를 넣은 신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기도 했다. 일반 어묵제품도 오징어먹물, 호박, 날치알, 치즈, 청량고추, 톳, 잡채, 두부, 양파 등을 섞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제품 다양화와 함께 사계절용 식품으로 진화하는 일은 업계의 과제. 겨울철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계절 편차가 크기 때문이다. 이지현 CJ제일제당 브랜드매니저는 “반찬 용도의 어묵은 조리해서 먹어야 하기 때문에 불편했지만 간식용으로 확대되면서 제품도 고급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 바뀐 어묵 제조공정
‘어묵’ 하면 떠오르는 안 좋은 인식은 위생적이지 않다는 선입견이다. 먼지 날리는 길거리에서 팔리던 장면과 과거 좁은 공간에서 수작업으로 제조되는 모습이 겹쳐진 까닭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당국의 조사를 받았던 업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방문한 부산대원어묵의 제조공정을 보니 생각이 확 바뀐다. 배합가공실에 개인용 장화와 위생모자, 두 겹으로 된 위생복, 위생장갑, 마스크를 모두 구비하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 원재료인 연육을 찰기 있게 만들어 자르고 포장하는 공정이 대부분 자동화됐다. 김이균 대표는 “포장실은 위생에 가장 신경을 쓰는 장소로 영상 10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바닥은 이물질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강도가 높은 자재를 깔았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게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의 적용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HACCP는 원재료 생산부터 가공 조리 보관 유통 그리고 소비자 섭취까지 각 단계에서 위해 요소가 해당식품에 혼입되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관리 시스템으로 2008년 도입돼 2012년 업계에 완전히 정착됐다. 어묵업계의 한 원로는 “현재 제조공정과 위생복이란 개념조차 없는 과거를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이라고 말했다.
부산=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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