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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들어와 대중화, 부산어묵 '전국구'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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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들어와 대중화, 부산어묵 '전국구' 명성

입력
2015.10.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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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은 생선 살에 소금을 일부 넣은 뒤 잘게 갈아 만든 제품을 통칭한다. 어묵과 오뎅이 같은 뜻으로 혼용되지만 오뎅은 어묵을 비롯해 유부, 무, 곤약 등을 꼬챙이에 꿰어 장국에 익힌 일본 음식이다. 오뎅이 국내에선 어묵을 꽂은 형태의 길거리 음식으로 주로 판매되면서 어묵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졌다.

생산 살을 발라내고 으깨서 먹는 전통은 아시아에 폭넓게 퍼져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 중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에서도 ‘피시볼’이란 명칭의 어묵제품이 각종 요리에 사용된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진연의궤’나 ‘산림경제’ 등의 서적을 보면 생선 살을 얇게 저미고 뼈를 발라 낸 뒤 고기나 야채, 버섯. 녹말 등을 섞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의 어묵은 일제 시대 때 들어와 대중화됐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큰 항만과 어장을 보유한 부산이 어묵 중심지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 일본인과 부산 상인들에 의해 부평 깡통시장에 어묵 공장과 상점이 들어선 뒤, 부산 곳곳의 재래시장엔 어묵가게가 차례로 생겼다. 6.25전쟁 중 부산 피난 시절 어묵은 허기진 서민의 배를 채워주는 길거리 음식으로 각인됐다. 1960년을 전후해 부산에선 미도 영진 대원 동광 환공 삼진 등 어묵회사들이 잇따라 설립됐다. 현재 판매되는 어묵의 형태나 맛은 이때 형성됐다는 게 어묵 기술자들의 전언이다. 초창기 어묵 제품들은 유통기간이 짧은데다 수작업에 의존해 소규모 업체들이 산업을 주도했다.

부산의 한 어묵공장 풍경. 직원들이 위생복과 위생장비를 착용하고 어묵을 제조하고 있다.
부산의 한 어묵공장 풍경. 직원들이 위생복과 위생장비를 착용하고 어묵을 제조하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뼈와 껍질을 발라내는 채육기를 필두로 연육에서 물기를 빼는 탈수기, 먹기 좋게 모양을 다지는 형성기 등 기계설비들이 도입되고 식품위생법 강화하면서 어묵업체 규모도 커졌다. 1985년 삼호가 어묵 제조에 뛰어든 후 대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해졌다. 부산시와 삼진어묵 등의 마케팅도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제조업체나 판매지역과 무관하게 현재 팔리는 대부분의 어묵제품에는 ‘부산어묵’이란 명칭이 들어갈 정도로 부산어묵은 어묵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정호진(61) 부산미도어묵 대표는 “부산어묵은 전통에 더해 반세기 가까이 맛과 품질까지 인정받으면서 ‘전국구’ 향토식품이 됐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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