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빌라촌 골목에 하얀 밴 한 대가 멈춰 서서는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바로 앞 과속방지턱 한가운데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버티고 앉아서는 꼼짝 않고 있었다. 덩치가 컸고 사위 풍경들마저 느릿하게 가라앉을 정도로 한가하고 나른해 보였다. “꼴대다!” 곁에 있던 친구가 반색했다. “꼴대가 뭐야?” 문득 매년 죽을 쑤는 프로야구팀 별명인가 싶었다. “이 동네 골목대장 고양이야. 쟤 포스 장난 아냐.” 친구가 말했다. 골목대장을 줄여서 꼴대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고양이 구경도 할 겸, 차도 통과하게 할 겸 가까이 다가갔다. 이편을 뜨악하게 바라보기만 하다가 코앞까지 가자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느릿느릿 후진하던 밴이 그제야 직진해 골목을 빠져나갔다. 과속 방지턱 위에 살을 다 발라낸 생선뼈가 보였다. 꼴대는 골목 한편에 주차한 자동차 앞에서 지긋이 이편을 마주보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심드렁하게 “뭘 봐?”하는 표정이었다. 나이는 12살 가량, 사람으로 치면 환갑 진갑 다 지난 노인네인 셈. 주위가 어떻게 돌아가든 자기 페이스와 중심을 잃지 않는 노련한 터주대감의 위엄이 느껴졌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몇 컷 찍었다. 눈빛이 그윽했다. 사람의 시간이 아닌, 고양이만의 내밀한 시간 속으로 들어온 양, 사위가 문득 고적했다. 이곳이 사람만의 세상은 아니라는 작은 기별 같았다.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