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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독일의 시대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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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독일의 시대여야 했다”

입력
2015.10.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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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오스트리아 빈의 그리엔슈타이들 카페 모습. 독일 문화권에 속했던 빈의 카페들은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중심지였다. 글항아리 제공
1897년 오스트리아 빈의 그리엔슈타이들 카페 모습. 독일 문화권에 속했던 빈의 카페들은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중심지였다. 글항아리 제공

저먼 지니어스

피터 왓슨 지음ㆍ박병화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1,416쪽ㆍ5만4,000원

‘18세기에 이미 50개의 대학을 보유한 나라, 교양을 이상으로 삼았던 나라, 교육 받은 중산계층을 최초로 형성한 나라, 유럽의 세 번째 르네상스, 두 번째 과학혁명이 일어났던 나라’

지금은 사라진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 작가 키스 불리번트는 독일에 대해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1933년 이전의 독일 문화사는 그들이 결코 알지 못한 사라진 나라의 역사”라고 말했다.

기자 출신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원이었던 피터 왓슨의 ‘저먼 지니어스’는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독일 천재들의 활동을 과학ㆍ음악ㆍ철학 분야에서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서장에서 명백하게 책의 성격을 설명한다. “독일 천재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번성했는지, 또 그들이 우리가 알고 있거나 인정하는 것 이상으로 어떻게 우리 삶을 형성해주었는지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어떻게 히틀러 때문에 파멸했는지에 대해서 짚어볼 것이다.”

저자는 오스트리아ㆍ헝가리ㆍ체코슬로바키아ㆍ폴란드 등 독일 연방에 인접한 수많은 국가들이 독일어를 사용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독일어로 말하고, 듣고, 쓰고, 생각하는 가운데 솟아난 이른바 ‘독일 정신’이라는 건 무엇일까?

17세기 말~18세기 초 독일 대학에선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괴팅겐대는 전통적인 신학부의 검열권을 제한했고, 이는 신학부와 철학부의 상대적 가중치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신앙 고백의 시대가 저물고 사상과 저술의 자유가 폭발한 것은, 14~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일어났던 일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 시기 음악에서도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음악 감상을 비롯해 소비, 이해까지 모두 철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예술은 더 이상 오락의 도구가 아니라 진리의 도구”라는 E T A 호프만의 말은 당시 음악에 접근하는 태도가 어느 깊이까지 들어갔는지를 말해준다. 이는 당시에 성행했던 대중 음악회와 맥을 함께 한다. 궁정이나 교회에서만 즐겼던 음악이 대중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작곡가들은 음악의 형식과 구성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고, 이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가 탄생하는 토양이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고급 문화는 독일에선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문화와 동의어였다. 다른 서구국가들이 문화를 고급 문화와 먹고 사는 모습 일반이라는 단어로 사용했다면 독일에서 후자는 ‘문명(Zivilisation)’이고 전자만이 ‘문화(Kultur)’였다.

이처럼 독보적인 지성과 예술성은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허망하게 막을 내린다. 1933년 히틀러가 총리로 선출되기 이전, 독일은 베토벤, 하이든, 바흐의 음악을 낳은 나라, 릴케, 괴테, 헤세의 문학이 탄생한 나라,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이 탄생한 나라였다. 하지만 이후 1939년까지 해외로 망명하거나 집단 처형장에 끌려간 독일의 작가, 예술가, 과학자의 수는 6만명에 달한다. 저자는 독일의 고급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민족주의가 출현하는 배경이 됐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도, 사라져버린 독일 천재들에 대한 그리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이 죽거나 도망가지 않았다면 역사는 지금과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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