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경제적 패권을 둘러싼 흥망성쇠의 역사가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은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그곳으로 가는 길을 ‘새로운 길’이란 뜻의 비아 모데르나(Via Moderna)로 명명했다. 이때 ‘새로운’이란 형용사는 속주에서 얻게 될 다양한 산물과, 노동력을 통한 ‘좀 더 나은 인생’을 뜻했다. 16세기경 스페인 사람들은 남미 아마존 강가 어딘가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나라, 엘도라도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는 신대륙 탐험의 중요한 동기를 부여했고 유럽 전역을 식민 활동의 광풍으로 몰아넣었다.
황금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은 새로운 탐험과 시도를 부추긴다. 오늘날의 황금은 광물이 아닌 인간의 욕망이다. 동질화된 욕망이 촘촘하고 큼직하게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곳. 이곳이 엘도라도다. 서울, 뉴욕, 파리, 런던, 상하이 이런 도시의 스타일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한 이들, 그들의 욕망이 엘도라도다. 패션의 역사를 연구하는 내게 도시란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상품을 파는 장소다. 도시란 그 자체로 엄청난 돈과 욕망을 유인하는 자석이다. 17세기, 루이 14세의 지휘 아래 설계된 파리는 유럽의 귀부인들이 한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도시였다. 가로등을 달아 밤 문화를 만들고 쇼핑을 장려했다. 왕의 머리를 해주던 헤어디자이너와 구두 장인에겐 매장을 내줬고 그 매장은 유리로 장식, 서비스가 시행되는 모습을 사람들이 지켜볼 수 있게 했다. 다른 나라들이 유적설명에 머문 기존의 여행 가이드북을 낼 때, 먹고 즐기고 옷을 사 입는 멋쟁이 되기 코스를 정리해 배포했다. 라이프스타일과 그 체험을 경제의 중요요소로 발견해 발전시켰다. 우리가 오늘날 프렌치 시크라고 말하는 프랑스의 라이프스타일 미학은 이렇게 태어났다. 바로 도시를 배경으로.
독일의 히틀러는 이런 파리의 위상을 부러워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를 점령하자마자 파리의상협회를 급습, 패션산업 관련 자료 일체를 빼내 베를린으로 이송했고 파리의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회유 및 압력을 가해 사업거점을 베를린으로 옮기도록 했다. 베를린을 파리를 넘어선 유럽 제1의 패션과 예술의 도시로 만들려는 야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파리가 지금껏 누적해온 문화적 매혹의 요소들, 여인들의 패션 스타일링, 삶을 향유하는 방식은 빼앗을 수 없었다. 패션은 도시에서 태어나 사멸하지만, 그 과정에서 도시에 ‘독특한 미감의 옷’을 입힌다.
한류라 불리는 미감의 체계 때문에 서울이 북적인다. 결국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패션 스타일링이, 삶을 즐기고 맛보고 체험하는 방식이 타인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돈을 벌게 해주었다. 중국 관광객이 몰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과연 관광객들을 앞으로 견인할 서울 스타일이 존재하는가?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도시설계이론가인 캐빈 린치는 1966년에 이미 ‘도시란 사람들의 마음에 그려지는 이미지’라고 말했다. 패션 저널리스트 이자벨 토마가 쓴 ‘You are so French!’란 책의 한 대목을 인용해본다. “프랑스 여성은 어떤 식으로든 과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때로 머리가 뻗쳐 있어도, 손톱 손질을 받지 않았어도, 화장을 하지 못했어도, 그것을 의식하거나 주눅들지 않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세히 신경 쓰지 못했어도 여전히 세련미가 흐른다. 또한 이들의 살짝 제멋대로에 예측 불가능한 기질, 이런 특징은 절대 유행을 타는 법이 없고, 수많은 이들이 모방하려 해도 똑같이 하지 못한다.” 프랑스 여자들에 대한 지나친 칭찬이지만, 이 글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삶에 대한 태도이자, 이것이 모든 면에 녹아있을 때, 비로소 라이프스타일이란 말을 쓰게 된다는 점이다.
5년 내에 현재 중국 내 한류열풍을 비롯한 사업기회가 닫힐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저 이 도시 안에서 타인들이 모방하고 싶은 삶의 방식을 찾아내서 우리만의 것으로 소화하면 된다. 서울시의 최근 도시 브랜드 작업에 찬반론이 비등한다. 한 나라, 한 도시를 설명하는 구호, 혹은 표제어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어야 한다. 도시의 스타일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김홍기ㆍ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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