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뿔났다.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면서 창업 이후, 그 동안 중단 없이 받아왔던 계열사 경영 보고를 열흘째 받지 못하면서다. 신 총괄회장은 급기야 각 계열사 대표들에서 경고장을 보내며 압박에 나섰다.
29일 롯데그룹 등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지난 26일 롯데그룹 14개 계열사 대표들에게 ‘정기 보고 촉구의 건’이란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 공문에서 “최근 본인은 소송을 진행함에 있어 권리보호를 위해 전무 이일민(롯데그룹 소속 비서실장)을 비서직에서 해임한 바 있으나 이를 빌미로 각 계열사 임직원들이 그 동안 시행하던 정기적 보고를 생략하거나 업무지시를 따르지 않는 등 고의적으로 업무를 방해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어 “이에 본인은 이 시각 본인의 직접 지시 또는 본인의 사용인을 통한 지시에 불응하면 그 책임을 물을 것임을 통보한다”고 경고했다. 만약 계속해서 그룹 계열사 대표들이 신 총괄회장에게 보고를 거부한다면, 인사상의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통보서가 발송된 이후, 29일 현재까지도 신 총괄회장에 대한 계열사 업무 보고는 재개되지 않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계열사 업무 보고를 받은 것은 지난 19일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의 보고가 마지막이었다. 신 총괄회장인 이전까지만 해도, 매일 오후 3~5시 사이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현황 등을 직접 보고 받으면서 경영 상황을 파악해왔다.
롯데그룹 계열사 대표들이 이처럼 신 총괄회장에게 보고를 중단한 것은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경영권 다툼과 직결돼 있다. 지난 16일 오후 신 전 부회장측은 신 총괄회장 집무실 관리를 전담하겠다며 비서와 경호인력들을 34층에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은 롯데 정책본부 소속으로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이일민 전무를 해임했고, 신 전 부회장측은 20일 총괄회장의 뜻이라며 나승기 신임 총괄회장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이후 현재까지 신 총괄회장의 34층 집무실은 사실상 신 전 부회장측 인력이 장악하고 있다.
롯데 계열사 대표들의 생각은 분명하다. 이처럼 롯데그룹과는 무관한 신 전 부회장측 인사들이 신 총괄회장을 둘러싼 상황에선 그룹의 중요한 경영 사안을 논의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도 계열사 대표들은 언제든지 총괄회장에게 보고할 준비가 돼 있다”며 “하지만 그룹과 전혀 관련 없는 신 전 부회장측이 보고를 받거나 보고에 배석하는 경우 기밀사항이 제3자에게 유출돼 이사의 비밀유지 의무가 위반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롯데 계열사 대표들은 그룹과 관련 없는 사람들이 신 총괄회장 집무실에서 퇴거하고, 제3자 배석 등의 장애가 해소된다면 언제든지 신 총괄회장 보고를 재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재경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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