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목소리에 경상도 사투리가 묻어났다. 굵고 짧으면서도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 말투가 그답다. 10년 넘게 카메라 앞에 서면 달라질 만도 한데 그의 말투는 여전히 우직했다. 미소년의 싱그러움이 물러나고 각이 도드라진 얼굴에 더욱 어울렸다. 신작 영화 ‘검은 사제들’의 개봉(11월5일)을 앞둔 강동원을 29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조작한 듯한 비현실적인 얼굴과 몸의 비율은 시간에서 한참 비켜서있었다.
‘검은 사제들’은 충무로에선 낯선 소재의 영화다. 악령이 깃든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나선 두 사제의 사투를 그렸다. 제작사가 내건 장르는 ‘미스터리 드라마’. 호러보다 스릴러에 가깝다. 사람의 몸에 숨어든 악령을 퇴치하는 과정(구마의식)을 묘사하며 서스펜스를 빚어낸다. 강동원은 막 신학교를 졸업한 젊은 사제 최 부제로 변했다. 구마의식을 해온 노련한 김 신부(김윤석)를 돕는 인물이다.
‘검은 사제들’은 장재현 감독이 만든 단편영화 ‘12번째 보조 사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제13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 출품돼 호평을 받았는데 강동원이 심사위원이었다. 강동원은 “단편영화도 이렇게 상업적으로 잘 만드는구나 생각했다”며 “영화제 뒤풀이 장소에서 장 감독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영화를 잘 만들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연은 이어졌다. 영화사 집에서 장 감독이 장편으로 각색한 시나리오를 강동원에게 건넸다. 강동원은 “(호감을 지닌 단편이) 장편으로 만들어진다니 출연하고 싶었다”며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소재라서 더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생소한 소재라 “어느 때보다 자료조사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중국어와 라틴어 등으로 이뤄진 기도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외웠다. 5일 동안 한 신부와 숙식을 함께 하며 신부들의 생활을 몸에 익혔다. 그는 “머리가 나쁘면 신학교를 졸업하기 어렵고 신앙심만으로는 신부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매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비밀과 고민을 털어놓는 상황을 신부님들은 어찌 견디는지 제일 궁금했어요. ‘어떻게 그리 참고 사시냐’고 여쭤봤는데 ‘나는 귀를 빌려주는 사람’이라고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그때 어떤 느낌이 가슴에 와 닿더군요.”
강동원의 출연작 면면은 톱스타라는 그의 위상과는 거리가 좀 있다. 그는 도전 의식이 넘치는 영화들에 즐겨 출연한다. ‘초능력자’(2010))에선 눈빛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초인을 연기했고, ‘의형제’(2010)에선 남한에 안착한 북한 공작원 송지원을 맡았다. 군복무를 마친 뒤 충무로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군도: 민란의 시대’(‘군도’)에서도 그는 예상과 달리 조연급 악역 조윤을 연기했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선 조로증에 걸린 아들을 둔 철없는 30대 가장으로 변신했다. 고난을 자초하는 듯한 그의 연기 행보에 대해 “연기력을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라는 뒷말도 나올 만. 하지만 그는 “연기력을 드러내기 위해 영화를 고르지는 않는다.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언제나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연기보다 외모를 먼저 거론하는 대중의 반응에 대해서도 강동원은 무심했다. 그는 “어떤 배우는 얼굴이 고와 일부러 남성적인 캐릭터를 맡는다거나, 신체에 변화를 주는 역할을 하곤 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어차피 나이 드는데 외모를 억지로 망가트릴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저 “어느 역할이든 다 도전하고 싶다”며 연기 욕심을 드러냈다.
그는 “데뷔했을 때부터 연기가 적성에 맞다고는 생각했으나 2009년쯤에서야 내가 영화를 책임질 수 있는 ‘프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기가 많이 편해졌어요. 예전에는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 속에 그림을 그리면 잘 안 될 때 많거나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요즘은 의도했던 대로 연기가 나와요. 얼마나 더 섬세히 역할을 만들어내고 깊은 감정을 표현하느냐가 앞으로의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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