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주택 청약통장 사들인 후
위장 결혼·전입 시켜 분양권 획득
프리미엄 받고 실입주자에 되팔아
경찰, 브로커 등 200여명 입건
SH 등 시공사들 일부 분양권 취소
입주자가 아파트서 쫓겨나기도
주택 청약통장을 사들여 위장결혼 등의 수법으로 ‘우량 청약통장’을 무더기로 만든 뒤 되팔아온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렇게 조작된 청약통장으로 무더기로 분양 신청을 하는 바람에 청약 경쟁률이 올라 주택 시장에 거품을 일으킨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분양권 당첨에 유리하도록 청약통장을 조작해 대량 유통시킨 혐의(주택법 위반 등)로 청약통장 브로커 정모(58)씨 등 3명을 구속하고, 통장을 구입한 부동산업자 양모(55)씨 등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들에게 청약통장을 판 187명도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 등은 2011년 2월부터 지난달까지 경기 성남의 한 오피스텔에 ‘통장작업공장’을 차리고 급전이 필요한 900여명으로부터 100만~3,000만원을 주고 청약통장을 사 들였다. 이어 딸린 가족이 많은 이들을 위장결혼 시키거나 아파트 분양 지역에 위장전입 시키는 방식으로 당첨확률이 높은 우량 청약통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신혼부부가 확인된 것만 60쌍에 달했다. 정부는 2007년부터 청약가점제를 도입, 부양가족수, 무주택 기간 등에 따라 분양권 당첨에 가점을 부여하고 있다.
정씨 일당은 이 같은 수법으로 청약통장에 매겨지는 가점을 84점 만점에 평균 70점까지 끌어올렸다. 이들은 당첨된 청약통장으로 직접 분양을 신청하거나, 부동산업자 양씨 등에게 개당 500만~2,000만원의 수수료를 붙여 팔아 넘겼다.
조작된 청약통장은 신흥 주거지역으로 떠오르는 위례, 세곡, 내곡지구 등지의 아파트 청약에 이용됐다. 당첨된 200여개의 분양권 중 일부는 평균 3억~4억원에 달하는 프리미엄(분양가와 매도가의 차액)을 받고 실입주자들에게 팔았다. 이들이 얻은 이익은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금 거래이기 때문에 정확한 집계가 어렵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프리미엄이 붙은 통장은 주택 가격을 부추겨 그 지역 아파트 실거래가격을 높이는 원인이 됐다”며 “한 아파트 단지는 20~30%가 브로커들이 작업한 청약통장으로 분양됐고, 적정가가 9억원인 내곡지구의 한 아파트는 17억원에 거래되는 등 부작용이 대단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2차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경찰은 지난 9월 국토교통부에 조작된 청약통장으로 당첨된 아파트 200여곳의 당첨 취소를 의뢰했다. 이에 따라 이미 공기업 시공사인 SH공사는 9곳의 분양권을 취소했고, 일부 민간 시공사의 경우 분양권 당첨자들과 재계약을 맺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당첨 취소로 이미 입주해 살던 일부 주민은 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정씨 일당의 꼬임에 넘어가 위장결혼을 했던 사람이 1년 가까이 시청이 지원하는 한부모 가정 지원금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행사로부터 당첨 취소 통지를 받은 실입주들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한 통장 명의자도 있다”며 “비슷한 범죄가 부동산 업계의 관행이 된 것으로 보여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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