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본 없이 코스닥 상장업체를 인수ㆍ합병(M&A)하려 주가를 조작한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김형준 부장)은 사채업자들과 공모해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하고 주가를 조작한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정모(44)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8일 밝혔다. 범행에 가담한 사채업자 김모(42)씨 등 8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회사에 범행을 저지른 김모(45)씨 등 4명도 구속 기소됐고 공인회계사 박모(41)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 등은 2011년 10월 빌린 20억원으로 LCD 부품 생산업체 W사의 주식 3,100만주를 247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정모(34)씨 등 시세조종세력 5명에게 의뢰해 두 차례에 걸쳐 주가를 조작했다. 이로 인해 2011년 1,310원이던 주가는 3,940원까지 올랐다. 이들은 이처럼 부풀려진 주식을 담보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같은 해 12월 잔금 227억원을 지급했다.
김씨 등은 2013년 4월 빌린 5억원을 계약금으로 프린터 부품 생산업체 P사와 계약을 맺고 주식 253만주를 넘겨받았다. 김씨는 이 주식을 담보로 45억원을 빌려 잔금을 낸 뒤 회사부채를 해결하고 담보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시세조종세력 장모(42)씨 등과 결탁해 2,510원이던 주가를 4,275원까지 부양했다. M&A 자문을 하던 공인회계사 박씨는 용역수수료를 받기 위해 이들과 손잡고 주가 조작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 김씨 등은 주가를 높여 사채업자가 신주인수권(워런트)을 행사해 대금을 내도록 유도하는 신종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워런트는 미리 약정한 가격(행사가)에 회사가 발행한 신주를 살 수 있는 권리로, 주가가 올라갈수록 높은 시세차익이 발생한다.
보통 주가 조작은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후 보유 주식을 팔아 차익을 통해 이득을 얻는다. 김씨 등은 회사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도 시세를 조종해 주가를 상승시킨 후 워런트를 보유한 사채업자들이 신주를 구매하도록 유도해 돈을 끌어 모았다.
이들이 이처럼 돈 한 푼 없이 M&A를 통해 집어삼킨 기업들의 주식은 거품이 빠지면서 가격이 폭락해 M&A를 투자 기회로 보고 추격 매수한 일반 투자자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혔다.
검찰 관계자는 “무자본 M&A 세력은 타인의 돈으로 상장기업을 인수하면서 조직적으로 주가 조작을 해 대상 기업과 선량한 일반투자자들에게 이중의 피해를 입혔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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